자유칼럼

우리가 다른 줄 알았습니다 (2007년 4월 26일)

divicom 2009. 11. 17. 00:01

찡그린 얼굴이 싫었습니다. 성격이 나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열리지 않는 입이 싫었습니다. 마음을 열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도둑질을 하다니 나쁜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죽이다니 나쁜 피를 가졌구나, 생각했습니다. 늘 미소를 띠고 친절하게 말하는 사람이 좋았습니다.

늘 평화로워 보이던 얼굴에 먹구름이 낀걸 보았습니다. 그 동안 나를 속여 온 건가 의심스러웠습니다. 늘 부드럽게 열리던 입이 영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마음을 닫겠다는 건가 괘씸했습니다. 자기 것 아닌 건 손대지 않던 사람이 남의 것을 훔쳤습니다. 저이가 내가 알던 그 사람일까 혼란스러웠습니다.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하던 사람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위선자에게 속았었구나,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입들이 말했습니다. 저들은 원래부터 우리와 달랐어. 저들은 날 때부터 나쁜 씨였어. 저 사람은 원래부터 성격이 나빴어. 저 사람은 원래부터 부정직했어. 저 사람은 원래부터 잔인했어.

끝없이 보고 들어도 무어가 무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많은 색깔과 너무 많은 외침, 짧은 시간에 너무 여러 곳을 떠돌다 알 수 없는 곳에 당도한 여행자처럼 피로했습니다. 어서 빨리 출발했던 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껐습니다. 신문을 덮고 귀도 눈도 닫았습니다. 텅 빈 방 한쪽에 빈 의자처럼 가만히, 한참 앉아 있었습니다.

찡그린 내 얼굴을 보았습니다. 아무도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입을 꼭 닫고 있는 나를 보았습니다. 누구의 가슴에도 들어가지 못한 내 말들이 떨어진 꽃잎처럼 슬프게 발에 채였습니다. 돈이 없어 하고 싶은 일을 못하다 돈을 훔치는 나를 보았습니다. 투명 인간이 된 내가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죽이는 걸 보았습니다.

내가 싫어하던 사람들이 모두 내 안에 있었습니다. 그들과 내가 다른 줄 알았었는데, 우린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만 운이 나빴습니다. 난 다만 운이 좋았습니다.

"…뜰에 있는 나무의 등이 굽은 건
토양이 나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굽은 것만을 탓한다…"

잊었던 시가 떠오릅니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2차 대전을 앞둔 히틀러 치하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썼던 시입니다.

지금 내가 사는 나라는 정전停戰 중이지만 우린 모두 우리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그들이 나와 다르다고 주장하는 내 안의 적과 싸워야 합니다. 다른 듯 보이는 것을 거부하는 편협함, 약한 자를 박해하는 비열함, 남의 불행에서 위로 받는 비루함, 남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잔인함.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습니다. *조 승희와 김 흥숙이 다르지 않습니다. 난 다만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조 승희: 2007년 4월 16일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32명을 사살하고 자살한 23세의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