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유자차를 담는 이유 (2010년 11월 30일)

divicom 2010. 11. 30. 10:15

남해의 양 이장님이 유자 한 상자를 보내주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고 키운 것이라 마트에서 파는 것처럼 맨들거리진 않지만 향기는 징기스칸의 군대처럼 강력합니다. 거실이고 방이고 금세 유자 향기에 점령당하고 맙니다.

 

연평도가 포격당한 후 마음은 뿌리를 잃은 풀이 되어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돌아간 이들을 생각하면 비통하고 살던 곳에서 도망나온 주민들과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거리엔 잎 떨군 나무들이 조용히 막 시작된 겨울을 맞고 있습니다. 겨드랑이 사이로 휙휙 소리내며 지나가는 찬 바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하늘 향해 머리를 꼿꼿이 들고 서있습니다. 롯데마트가 생긴 후 문을 닫았던 동네수퍼는 내부수리가 한창입니다. 

 

설탕을 사와야겠습니다. 유자차를 담아야겠습니다.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가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할 때의 마음도 지금 제 마음과 같았을까요? 제 애인이 '하는 수 없이 닦아도 도는 도'라고 하던 때, 그의 심경도 지금 제 마음과 같았을까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무언가를 하는 이런 마음이었을까요?

 

참, 위 문단에서 인용한 사과나무 얘기는 스피노자가 한 말이다 아니다, 말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말한 사람이 누구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이겠지요. 아직 제 마음처럼 흔들리는 분들, 오늘 유자차 한 번 담아보시지요.

 

1. 유자를 깨끗이 씻은 후 물기를 완전히 제거합니다. 2. 가능한 한 씨를 빼고 채를 썰거나 얇직얇직 저며줍니다. 3. 유자와 같은 양의 설탕을 넣어 잘 섞은 후 병에 담습니다. 그렇게 한 백일 두면 맛있는 차가 되지만 기다릴 수 없으면 바로 먹어도 됩니다. 유자는 새콤 달콤하지만 새콤한 맛을 싫어하는 분은 알맹이는 빼고 껍질로만 차를 담아야 달콤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