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연평도 포격 대응 의문점 (2010년 11월 23일)

divicom 2010. 11. 23. 21:51

북한군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해 2명의 장병이 숨지고 10여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서해에서 일어난 북한의 도발은 처음이 아니지만 민간인들이 사는 지역에까지 포를 발사한 것은 6.25전쟁 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햇볕정책으로 이완되었던 남북한 관계가 이 정부 들어 긴장일로를 걷더니 결국 이런 사건까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권력 세습을 이룬 공산 왕조의 도발 행위는 슬프고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북한의 도발에 대처하는 우리 군의 태도에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북한군의 1차 공격, 즉 해안포 20여발 발사가 오후 2시34분에 시작되었다는데 왜 우리 군은 13분 후인 오후 2시47분께나 대응포격을 했는가 하는 겁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2차로 오후 3시11분부터 수십 발의 포 사격을 가해왔는데 우리 군은 또 다시 14분이나 늦은 오후 3시25분에 대응포격을 했다고 합니다. 1차 공격 때와 비슷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응사한 것입니다.

 

군 관계자는, 대응포격이 늦어진 것은 정확한 표적(발사된 기지)을 탐지하고 사격승인 절차를 거쳐야했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대응사격은 소총처럼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승인을 거쳐야 한다"면서 "북측은 우리 민가를 향해 발사했지만 우리는 민간인 피해 없이 정확한 원점(표적)에 타격하기 위해 원점을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포사격 기지를 탐지하기 위해 연평도에서 가동 중인 대포병탐지레이더(AN/TPQ-36)로는 포 발사 기지를 알아낼 수 없다는 말인가요? 사격승인 절차가 얼마나 복잡하기에 비상사태에 10여분이나 걸리는 것일까요? 우리 군은 북한이 해안포를 발사하면 ‘즉각’ 사격진지를 향해 대응포격하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는데 왜 막상 포격을 받고 나서는 ‘즉각’ 응사하지 않은 걸까요?

 

또 우리 군은 오후 3시48분 북한에 도발행위를 즉각 중지토록 촉구하는 내용의 전통문을 장성급 군사회담 대표 명의로 발송했다고 하는데, 왜 1차 공격 직후에 발송하지 않고 2차 공격까지 받고난 후에 전통문을 발송한 것일까요?

 

우리 정부와 군은 미국 백악관이 이례적으로 새벽 4시 33분에 발표한 북한 비난 성명으로 위로 받았을지 모르지만, 나라를 잘못 만나 불귀의 객이 된 스물두 살 서정우 병장과 스무 살 문광욱 이병,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위로할 길은 영 없을 테니 참으로 애통하고 미안합니다.

 

Statement by the Press Secretary on North Korean Shelling of South Korean island (Nov. 23, 2010)

(백악관 대변인 성명)

Earlier today North Korea conducted an artillery attack against the South Korean island of Yeonpyeong.  We are in close and continuing contact with our Korean allies.

 

The United States strongly condemns this attack and calls on North Korea to halt its belligerent action and to fully abide by the terms of the Armistice Agreement.

 

The United States is firmly committed to the defense of our ally, the Republic of Korea, and to the maintenance of regional peace and stabi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