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노년일기 285: 그때 그 사람들 (2026년 6월 12일)

divicom 2026. 6. 12. 11:35

어젠 서울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했습니다. 3호선과 2호선,

수인-분당선을 갈아타고 서부에서 중부를 거쳐 남동부에 있는

서울숲에 갔습니다. 잘 하지 않는 긴 여행에 나선 건 숲

때문이었습니다. 숲을 매우 좋아하는 저는 우리말과 영어로 쓴

숲에 관한 시들로 <숲 Forest>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낸 적도 있습니다.

 

숲이라는 이름 때문에 가보고 싶어했던 서울숲에 옛 직장 동료들이

간다는 말을 듣고 함께 간 것입니다. 일행은 저를 포함해 여덟 명.

일곱 명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어딘가를 함께 가는데, 그 모임의

이름을 지은 저는 발족 초기에만 참여하고 거의 나가지 않았습니다. 

 

서울숲역 4번 출구 앞에서 일행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높은 건물들이

많아서인지 바람이 거세다 할 정도로 불었습니다. 일행은 전에도

그곳에서 만난 적이 있다는데, 그곳을 찾지 못해 늦게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숨어 있는 듯한 4번 출구의 위치 때문이었을 겁니다. 

 

조금 걸어가니 서울숲이었습니다. 마침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서울숲이지만 숲이라기보다는 공원이었고,

놀이기구 없는 놀이터 같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래도 꽃과 나무가

눈을 행복하게 하는데, 박람회에 맞춰 세운 듯한 갖가지 표지판과

조형물들이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출발 전엔 숲에 가는 것이니 오래 걷겠구나 생각하고 가장 편한

신발을 신고 갔지만, 모임의 중심은 걷기보다 이야기에 있었습니다.

한 30분 걸은 후에 벤치에 앉아 동료들이 준비해온 간식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 후엔

근처 카페에 가서 다시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그렇게 나눈 이야기 덕에 우리의 옛 동료중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고, 살아 있는 동료중에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올 때 타고 왔던 지하철을 역순으로 타고 집으로 가며 옛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친구들이 이 모임을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시종일관

그때 그 일들과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하룻밤 자고 나서 어제의 긴 외출을 정리합니다.

1. 같은 이름의 의미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서울숲'의 '숲'에  의미를 두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에겐 

    그냥 이름일 뿐이다.

2. 여러 사람이 만나는 모임은 겉돌기 마련이다.

    그런 모임에서 진지한 대화를 기대하지 말자.

3. 나이가 든다고 변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예 없거나.

4. 운명에 감사하자.

5.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지혜와 용기를 위해 기도하자. 

 

  https://www.youtube.com/watch?v=OT5SsMxc314&list=RDOT5SsMxc314&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