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독일 유명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 주자로
활동하는 지인이 한국에 왔을 때였습니다.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 동네 제 단골 카페로
커피를 마시러 갔습니다.
조금 늦게 가서인지 카페에 손님이 없었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맛을 칭찬하고 난 음악가는 생후
9개월된 아들 루드비히를 안고 카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루드비히?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
떠올랐습니다.
조금 있다 아기가 엄마에게 가겠다며 보채자 아이를
아내에게 안겨준 후 그가 카페 주인에게 영어로
물었습니다. "여기 이 악기 만져봐도 되나요?"
카페 주인이 그러라며 오래 쓰지 않아 쓸 수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 카페의 단골이 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 악기가 그 자리를 벗어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참 동안 악기를 만지작거리던 그가 다시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악기 연주해봐도 되나요?"
주인이 '안 될 텐테' 하는 표정으로 "그럼요" 하고
답했습니다.
그가 악기를 들고 불기 시작했습니다. '한 떨기
장미꽃'으로 알려진 곡, 아일랜드 시인 토머스 무어의
시에 아일랜드 전통음악을 접목시킨 곡이었습니다.
베토벤도 자신이 작곡한 작품 두 편에 이 곡을
차용했다고 합니다.
눈을 감고 들으니 작은 카페가 커다란 콘서트홀로
변했습니다. 슬픔과 희열이 함께 복받쳐 올랐습니다.
너무도 감동하여 '앙코르!'를 외칠 시간을 놓쳤습니다.
그와 함께했던 한나절 동안 그가 그렇게 멋져 보인 건
처음이었습니다. 전문가란 이런 것이구나, 오래 잠자던 것,
오래 죽어있던 것까지 살려내는 사람이구나! 감탄하고
또 감탄하며 '나도 저런 전문가가 되어야지' 결심했습니다.
그가 돌아가고 달이 바뀌고 감기에 시달리며 새삼 적지
않은 나이와 마주서고 보니 그날의 결심이 실천 가능할까
의구심이 듭니다. 그러나 실천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결심했으니, 하는 데까지 해야 합니다.
그날 그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살려내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제가 되고 싶은
전문가가 트럼펫 주자가 아니니 불가능하진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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