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들 2 (2024년 6월 26일)

divicom 2024. 6. 26. 11:10

윌리엄 포크너가 유명해지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그의 소설 때문이지만, 그의 소설 <내가 누워 죽어갈 때

(As I Lay Dying)>를 읽다 보면 이 사람은 시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와 소설은 길이와 표현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

태생 자체가 다릅니다. 시가 태어나려면 먼저 시인이

있어야 합니다. 시인은 누구나 보고 느끼는 것을 다른 눈으로

보고 느끼는 사람이고, 그가 그 느낌을 글로 적은 것이 시가 

되니까요.  소설의 경우엔 이야기가 소설가에 선행합니다.

그러니 시인은 태어날 뿐 만들어질 수 없지만, 소설가는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As I Lay Dying>을 읽다가 포크너가 시인임을 깨닫는 건

문장에서 배어나오는 '다른' 시각, 즉 감수성 때문입니다.

포크너의 간략한 전기를 찾아봅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의 문학 창작은 소설보다 시가 먼저였습니다.

 

<As I Lay Dying>이라는 제목부터 시적입니다.

이 제목은 <내가 누워 죽어갈 때>와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라는 두 가지로 번역되었는데, 문법적으로는

첫째 제목이 맞겠지만, 소설의 내용은 두 번째 제목이 더 잘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포크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의 소설을 읽던 제게 그가 시인임을 알려준 문장은 이렇습니다.

 

"When He aims for something to be always a-moving,

He makes it longways, like a road or a horse or a wagon,

but when He aims for something to stay put, He makes

it up-and-down ways, like a tree or a man. And so he 

never aimed for folks to live on a road, because which

gets there first, I says, the road or the house?"

--PP. 34-35

 

"하느님이 늘 움직이는 뭔가를 만드실 때는 길게 만드셔.

길이나 말, 마차처럼.  그렇지만 그대로 있어야 하는 걸

만드실 땐 위-아래가 있게 만드셔. 나무나 사람처럼.

하느님은 사람들이 길에서 살길 바라지 않았어. 그렇게

되면 길하고 집 중에 어느 쪽에 먼저 도착하는지 알 수가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