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엔 잠자리에 들고도 한참 동안
잠들지 못했습니다. 아이로부터 빗속에
'폐기물 수거 대상' 딱지를 붙인 채
버려진 피아노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피아노가 비를 맞고 있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트럭으로 물건을 날라주는
곳을 찾아 네 곳이나 연락했지만 아무도
그 일을 하려 하지 않더랍니다. 어쩌면
그 일을 해낼 자신이 없어 안 한다고
한 것인지 모릅니다.
피아노를 옮기는 데는 힘과 함께 요령이
필요한데, 전에 요령으로 피아노를
옮기던 분들이 이제 대개 고령이 되었고
젊은 사람들은 요령이 없어 들 수 없을
테니까요.
본 적도 없는 그 피아노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하얀 건반 검은 건반들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어 음악을 죽이겠구나,
사물에도 마음이 있지 않을까, 피아노도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
이십 년 전쯤 옆집에 사시던 이근삼 교수님이
이사가시며 봉고차 한 대를 채울 정도로 많은
책을 폐지 창고에 버리시던 게 생각납니다.
대학에 기부하려 하셨으나 대학이 반기지
않더라는 말씀을 사모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창고에서 몇 권의 책을 골라 들며, 책의 시대가
가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변화는 일어나고 사람과
사물이 버려지고 죽임을 당하지만 21세기의
버려짐과 살해는 그 어느 때보다 끔찍합니다.
더 나은 것을 위해 더 못한 것이 버려지는 게
아니라, 더 편리한 것을 위해 더 가치 있는 것이
버려지는 일이 흔하니까요.
피아노를 폐기물로 '수거'해가는 사람들은
피아노를 들고 가기 힘드니 그대로 가져가지
않고 부수어 가져간다고 합니다. 언젠가
아름다운 자개장을 부수어 가져가는 것을
보고 잠 못 이룬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시대의 폭력을 목격하게 될까요...
낯설고 무섭지만 눈 크게 뜨고 지켜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8Dab4QW6Cc&ab_channel=JimmyS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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