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113: 봄비 (2022년 3월 19일)

divicom 2022. 3. 19. 09:53

눈물 같고 마침표 같은 비가 혹은 날고 혹은 떨어집니다.

하얗게 젖은 세상 속에서 포크레인이 작동합니다.

아, 집 하나가 사라지는 중입니다.

 

예술가 주인이 살았을 때는 철철이 옷을 갈아입으며

아름답던 집... 몇 해 전 그이가 죽은 후엔 버려진 아이처럼

추레하던 집... 남은 가족들 사이에 유산 싸움이 붙었다는

소문 속에 어느 날 문득 수의 차림이 되더니

오늘 빗속에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부자가 삼대를 못 가고 빈자가 삼대를 안 간다'더니

아름다운 집은 이대도 가지 못하는가...

무너지는 집 마당의 숱한 나무들

저 포크레인 소리를 들으며 그들이 느낄 공포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아마도 한참 그 집이 섰던 길 쪽으론 가지 못할 겁니다.

나무들이 섰던 자리에 또 하나 높은 건물이 지어지고,

그 집이 누구의 무덤 위에 섰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칸칸을 차지하고, 그러고도 한참 후에나

갈 수 있을까요... 

 

오래 산다는 건 많이 이별하는 것

타자의 죽음을 목격하는 것

다른 존재들의 공포를 느끼는 것

죽음 위에 서는 생(生)의 비릿함에

진저리치는 것

 

그리고 봄비... 모든 '것'과 '것'들 토 닥 이 는

저 차갑고 뜨거운 손 손 손...

 

https://www.youtube.com/watch?v=fP14A6rUWBg&ab_channel=JimmyStr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