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종교가 권력을 만날 때 (2022년 2월 19일)

divicom 2022. 2. 19. 12:02

종교가 권력을 만나는 일은

잉크가 물을 만나는 일.

잉크가 물에 떨어지면 잉크는 사라지고

맑지 않은 물만 남습니다.

 

자신의 직분을 잊은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시끄럽고, 모든 가치가 '돈과 권력'으로 귀결되는

사회는 천박합니다.

 

건망증이 깊어지면 자신의 건먕증마저

잊게 됩니다. 천박한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천박함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도 애국심 넘치는 국민들은

이 나라를 이렇게 정의하는 걸 싫어하겠지요?

 

'대한민국: 건망증 말기 환자들과

권력과 돈 욕심에 찌든 졸부들의 놀이터'.

 

 

종교계의 위없는 실세들

 

종교인들이 대통령선거판을 휘젓고 있다. 세속으로 내려와 특정 진영과 거래를 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교회와 사찰이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도 있겠다. 종교와 권력이 우리네 상식이 설정한 거리 두기를 무시하고 종권(宗權)유착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김택근 시인·작가

여당 대선 후보가 며칠 전 서울 봉은사를 찾아가 불교계의 실세로 알려진 자승 스님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권력이 불교계에 쥐어준 것들을 서로가 확인하고 조계종은 반정부 집회를 철회했다. 사찰문화재 관람료를 둘러싼 ‘봉이 김선달 발언’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그 크기는 알 수 없다. 단지 속세의 셈법에 따른 주고받기식의 타협은 종교의 시간과 영역이 아니다. 비공개 만남을 공개함으로 자승 스님이 조계종 최대 실세임을 만방에 알렸다. 이로써 조계종과 총무원장의 위상이 왜소해졌다.

 

‘실세’란 원래 그 위에서 힘을 실어주는 ‘상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상징적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돌아보면 현대 불교계의 상징은 1947년 성철 스님과 함께 봉암사 결사를 감행했던 선승들이었다. 그들은 왜색에 물들어 쓰러져가는 불교를 일으켰다.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 선승들은 적게 먹고 죽도록 일하며 공부했다. 성철 스님은 수행승이 참선 중에 졸면 죽비를 내리쳤다. “이놈아, 밥값 내놓아라!” 그 외침에 한국불교가 깨어났다. 그들은 세속과 거꾸로 살았다.

 

“누가 어떤 것이 불교냐고 물으면 나는 세상과 거꾸로 사는 것이라고 답한다. 세상은 전부 내가 중심이 되어 나를 위해 남을 해치는 것이지만, 불교는 나를 완전히 내버리고 남을 위해서만 사는 것이다.”(성철 스님 법어)

 

봉암사 결사를 통해 기복신앙에 기대어 연명했던 불교가 바로 섰다. 수행으로 얻은 하심(下心)이 불교를 살린 것이다. 결사를 했던 선승 중 4명이 종정을 지냈다. 그래서 한국불교는 봉암사 결사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하지만 요즘은 죽비를 치켜든 상징은 사라지고 ‘위없는 실세’만 보인다.

 

야당 후보 배우자가 극동방송을 찾아가 보수 개신교단의 실세로 알려진 김장환 목사를 만났다. 비공개 만남이었다지만 언론이 보도했으니 의도된 행보였다. 그런 만큼 특정 정당과의 결탁이며 ‘무속 논란’에 휩싸인 김건희씨의 행적을 세탁해주는 이벤트라는 의심을 샀다. 언제부턴가 선거철이 되면 일부 개신교 목사들은 정치적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교인 수를 헤아려 그만큼의 영향력으로 목청을 높였다. 유통기한이 정해진 권력은 때가 되면 종교인들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그럴수록 종교적 오만은 커졌다.

 

종교가 권력과 유착하면 불의에 저항할 수 없다. 정의가 사라지면 사랑할 수 없다. 가난한 이들을 품을 수 없다. 권위, 물질, 신비주의에 물든 대형 교회들은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 가난한 사람들을 보듬었던 과거를 잊었다. 성전은 더없이 호화로워서 가난한 사람들은 감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가난했던 지난날들을 기억하라. 가난을 품었던 목회자들, 곧 기독교의 상징들이 있었음을 기억하라. 처음 길이 바른 길이고, 오래된 법이 새 법이다.

 

종교계에 실세라는 말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음은 우리 사회가 종교의 세속화에 눈을 감아주고 있다는 방증이다. 종지기로 살면서 동화를 썼던 권정생 선생은 교회가 세속화되어 예배당마저 부자들에게 빼앗길까봐 걱정했다. 이와 관련, 많은 글을 남겼다. 다시 읽으니 예언 같다. 선생은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며 아무리 추워도 맨손으로 줄을 당겼다. 새벽 종소리로 외롭고 아픈 이들을 깨워야 했기에 차마 혼자 따뜻해질 수 없었다. 선생이 종지기로 살던 시절로 돌아가보자. 맨손으로 줄을 당겼던 그 종소리를 들어보자. 지금 가난한 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오염되어 있는가.

 

“정생의 종소리를 듣고 교인들이 예배당에 모였습니다. 농촌 교회의 새벽 기도는 소박하고 정겨웠습니다. 석유 램프 불을 켜 놓고 마룻바닥에 꿇어앉아 조용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교인들은 하느님 앞에 대개 슬픈 사연 하나씩을 들고 왔습니다. 새벽 기도가 끝나고 모두 돌아가면 햇살이 교회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왔습니다. 그때 뒷정리를 할 때면 군데군데 마룻바닥에 눈물 자국이 얼룩져 있었습니다. 정생은 차마 그 눈물 자국을 닦아내지 못했습니다.”(김택근 <권정생 이야기-강아지똥별>)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219030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