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오래된 수틀 -- 나희덕 (2022년 2월 6일)

divicom 2022. 2. 6. 21:54

쪽파나 알무(표준어: 총각무)를 다듬거나 구멍 난 양말을 기울 때면

바하나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을 틀어 놓습니다.

그러면 노동의 시간이 음악 감상 시간이 되어

어깨 아픈 것도 허리 아픈 것도 모릅니다.

 

수를 놓을 땐 어떨까요?

그때도 음악을 틀어 놓는 게 좋을까요?

아니, 그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수를 놓는 것은 힘들어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시간이고

창조의 시간은 단순 노동의 시간과는 다를 테니까요.

 

아래 작품과 시는 일러스트포잇 김수자 씨의 '시시한 그림일기'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의 나날도 이 작품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맨 아래 글은 김수자 씨의 글입니다.

 

오래된 수틀 - 나희덕

 illustpoet  2017. 3. 3. 18:39
 
캔버스에 혼합매체






누군가 나를 수놓다가 사라져버렸다
씨앗들은 싹을 틔우지 않았고
꽃들은 오랜 목마름에도 시들지 않았다
......구름은 더 가벼워지지도 무거워지지도 않았다
..........
비단의 둘레를 댄 무명천이 압정에 박혀
팽팽한 그 시간 속에서
..........
나를 처음으로 뚫고 지나갔던 바늘 끝
이 씨앗과 꽃잎과 물결과 구름을
그 통증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
..........


 





내가 나인것을 언제 알았을까요.
타인과는 다른사람으로 세상의 유일한 인간으로서 자신만의 삶을 가야한다는것을......

아마도 중학교 2학년 즈음 사춘기였던듯 합니다. 열등감으로 무장한 선생님들의  언어 폭력과 체벌을 견디며 앞으로의 미래도 장밋빛은 아닐거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죠.
그후로도 오랫동안 한땀한땀 수를 놓듯이 생의 무늬를 새기는 일은 멈출수도 매듭을

자를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매끄럽지 않은 수틀 뒷면없이 저리 고운 앞면을 만날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