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으며 부끄러움이나 슬픔을 느끼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요즘 읽은 글 중엔 헬렌 켈러 (1880-1968)의 글이 그랬는데, 그 글은
<The American Idea -- The Best of the Atlantic Monthly>에
실린 짧은 에세이 'Three Days to See'로, 그가 1933년에 쓴 것입니다.
생후 19개월에 열병을 앓고 시력과 청력 모두를 잃은 켈러가
'3일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 시간에 무엇을 할까 생각하며
자신이 겪고 있는 장애와 비장애인들에 대해 쓴 글입니다.
3일 동안 볼 수 있다면 첫날은 자신을 지도해 준 앤 설리번 선생을
찬찬히 본 후 자연을 보고, 둘째 날엔 자연사박물관과 미술관에 가고,
셋째 날엔 음악회와 영화관에 가고 싶다고 쓰여 있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그의 지적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기적 자체인 사람... 글이 있어 그와 동행할 수 있으니
우리는 얼마나 운이 좋은 걸까요? 말없음표는 문장의 생략을 뜻합니다.
p. 466: Only the deaf appreciate hearing, only the blind realize the
manifold blessings that lie in sight...
I have often thought it would be a blessing if each human being
were stricken blind and deaf for a few days at some time during his
adult life. Darkness would make him more appreciative of sight;
silence would teach him the joy of sound...
Recently I was visited by a very good friend who had just returned
from a long walk in the woods, and I asked her what she had observed.
"Nothing in particular," she replied. I might have been incredulous had
I not been accustomed to such responses, for long ago I became
convinced that the seeing see little.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음을 감사하고,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만이 볼 수 있음이 얼마나 다양한 축복인지 인식합니다...
성인이 된 사람들이 모두 단 며칠씩만이라도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를 경험하게 되면 좋을 거라고 가끔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어둠 덕에 볼 수 있음을 더욱 감사하게 되고
들리지 않는 침묵 덕에 듣는 기쁨을 깨닫게 될 테니까요...
최근에 친한 친구 하나를 만났습니다. 친구는 숲속을 한참 걷다
돌아온 참이었습니다.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더니 "별로 본 것 없어"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그런 반응에 익숙해 있지 않았다면 친구의 말을
믿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오랜 전에 저는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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