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인 3일 밤 옥상에서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눈사람을 만들어 집으로 안고 왔습니다.
눈사람을 만들며 눈사람의 생애가 사람의 생애와
다르지 않구나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잘 뭉쳐지지 않았지만
계속 만지니 쉽게 부서지지 않는 작은 덩어리가 되었고,
일단 덩어리가 되니 그 다음에 키우기는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베란다의 둥근 화분 받침을 기단 삼아 눈사람을 앉히고
활짝 피었다 시든 후 돌돌 말려 떨어진 덴마크 무궁화 꽃잎으로
눈썹을 만들고, 조그만 돌로 눈을, 귤 껍질로 코를 만들었습니다.
눈사람은 나면서부터 묵언 중이니 입은 필요할 것 같지 않았는데
코 아래 자연스레 주름이 생겨 입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계속 제라늄 옆에서 천리향 향기를 맡을 것 같더니
어느 순간 눈사람이 앉은 자리에 그대로 누웠습니다.
눈, 코, 눈썹 모두 떨어진 얼굴에서 입만 슬며시 웃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눈사람이 누웠던 자리엔 한 줌 흙만
남아 있었습니다. 눈사람이 사라진 자리엔 눈물이 남으리라 생각했는데
흙이라니!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 사람이든 눈사람이든 만물의 끝은 흙이로구나!
같은 끝, 좋은 끝이구나.
세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처럼 '끝이 좋으니 다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