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김수환 추기경이 생각나는 이유 (2010년 8월 18일)

divicom 2010. 8. 18. 09:32

정치가 사회 분열을 초래하면 어느 분야나 다 분열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우리나라처럼 세속적 좌절이

종교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나라에서, 종교가 사회의 축소판이 되어 종교인들이 분열하는 건 당연합니다. 신도 수가 가장 많다는 세 종교, 즉 불교, 개신교, 천주교 중에 그나마 천주교의 내분이 두드러지지 않았는데, 엊그제 한겨레신문을 보니 천주교도 다른 종교를 닮아가나 봅니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를 주선하고, 이듬해 촛불집회 시국미사를 벌였던 정의구현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에게 3년째 안식년이 주어졌다고 합니다. 가톨릭 사제는 서품을 받은 후 10년이 지나면 안식년 휴가를 받는데, 전 신부는 이미 2001년 안식년을 보냈기 때문에 2008년에 다시 안식년을 받은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라고 합니다.

 

2008년 안식년 발령을 앞두고 전 신부를 면담한 서울대교구 총대리 염수정 주교는 “(추기경이) 삼성 문제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했느냐”며 “해외 교포사목으로 가거나, 사제단 대표에서 물러나면 본당에 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전 신부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전 신부가 두번 째 안식년을 받은 2008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던 함세웅 신부도 보좌신부가 전혀 없는 서울 청구성당 주임신부로 발령이 났다고 합니다. 

 

안식년은 통상 1년이기 때문에 2009년 8월에 전 신부의 안식년이 종료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당시 인사에서 제외됐으며, 최근 다시 인사를 앞두고 전 신부를 부른 염수정 총대리주교는 본당이 아닌 선교공동체에서 사목활동을 하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 신부는 과거의 인사가 불합리했으므로 다시 돌아간다면 본래 자리로 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고, 그 결과 다시 안식년을 받았다는 겁니다.

 

3년째 '안식'하게 된 전 신부는 “인사권은 교구장의 고유 권한이라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다만 언제 안식년이 풀릴지 모른다는 게 문제다."라고만 했다고 하니, 문제의 열쇠는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에게 있습니다. 정진석 추기경은 2006년 2월 한국의 두번 째 추기경이 되었고, 작년 2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후론 한국의 유일한 추기경입니다. 그런 추기경이 천주교 사제들과 신도들을 단결시켜 한국사회를 바로잡는데 기여하기는커녕 분열시키는데 앞장 서고 있는 것 같으니,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평화구현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는 정 추기경이 전 신부에게 다시 안식년 발령을 내린 것은, “사제단 대표의 손을 묶어 사제단을 무력화하려는 것으로, 이는 추기경의 권한으로 넘겨버릴 일이 아니다”라고 하고, “전 신부 인사는 서울대교구, 나아가 사회문제에 침묵하는 한국 천주교의 문제가 도드라진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함세웅 신부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천주교가 부정과 불의를 외면하는 등 예언자적 소명을 소홀히 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부패한 정부와 불의한 기업에 면죄부를 주고 공범자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고, “일제 때 폐쇄적 교회관으로 시대적 고민을 망각했던 부끄러움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천주교 신도인 제 지인들 중에도 천주교 성직자가 사회 문제 해결에 개입하는 것을 싫어 하며 "신부님은 그냥 성당에 계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성직자는 세상 문제를 모르쇠할 수 없고 모르쇠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문제들이 '사랑과 정의'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진석 추기경도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을 맞아 발표한 축하 메시지에서 "참 평화를 만드는 것은 사랑과 정의"라고 말했습니다. 불의한 힘에 맞서는 행동 없이는 "사랑과 정의"를 유지, 구현할 수 없음을 정 추기경도 알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에게 불의와 맞설 힘을 주었던 하느님이 정 추기경에게도 힘을 주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