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자살 권하는 사회 (2010년 8월 17일)

divicom 2010. 8. 17. 10:00

오늘은 제 아우의 생일입니다. 그는 태어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제게는 그의 생일이 참으로 감사한 날입니다. 그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저의 삶은

꼭 그만큼 불충분했을 테니까요.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태어나는 것도 힘겨운 일입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이루어지는 게 임신이라고 하지만, 임신은 그 단순한 문장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 즉 정자의 긴 여행, 난자와의 만남, 수정, 수정체의 착상 등을 거칩니다.

착상이 된 후에도 평균 270일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야 출생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우주적으로 말하면, 어떤 사람의 탄생에는 270일의 몇 곱절이 되는 긴 준비기간이

있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태어났으니, 모든 생명체는 생명이 지속되는 한 타고난 잠재력을

발휘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합니다. 잘 생기게 태어났든 못 생기게 태어났든,

소위 정상적인 몸을 가지고 태어났든 정상과 다른 몸을 가지고 태어났든, 모든

생명체는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합니다.

 

고속도로변의 민들레, 보도블럭 사이를 비집고 자라는 풀들, 수없이 많은 산과

들의 식물들, 잔인한 먹이사슬에 묶인 채 평원과 사막과 산과 들을 떠도는 무수한

야생동물들, 이 생명체들 모두 자신에게 부여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그 생명의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선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작년 한해에만

14,579명이 자살로 사망하여 2008년보다 18.8퍼센트나 늘었으며, 최근 5년 중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초.중.고교생의 자살입니다.

2008년 137명에서 2009년엔 202명으로 늘었다고 하니 47퍼센트나 증가한 겁니다.

그 중 69퍼센트인 140명은 고등학생이었고, 중학생이 56명, 초등학생이 6명이었습니다.

202명의 청소년이 목숨을 버렸다는 건, 202개의 꿈이 꺾였다는 것입니다.

 

신문 기사에는 "평소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성적이 나쁘지 않아 자살의 사전 징후나

유서가 전혀 발견되지 않은 학생 자살자도 59명"이나 되었다는데, 문장의 앞부분을

보니 코웃음이 나옵니다. 제 어린 시절의 자살 시도가 성공했다면 누군가가 "평소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는데 왜 자살했을까?"라고 했을 것 같아서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일선학교를 통한 예방 활동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했다는데,

글쎄... 하는 마음이 듭니다. 자살 원인 중에서는 가정불화를 비롯한 집안 문제가 가장 크다고

하는데, 그런 이유로 자살하고 싶어하는 청소년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교과부가 하려는

활동은 무엇일까요?

 

자살 욕구에 시달리며 십대를 보낸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자살을 결심하게 하는 건

괴로움보다는 외로움입니다. 부모가 불화하여 괴롭다해도 그런 문제를 털어놓고 얘기할

상대가 있으면 자살을 결심하진 않을 겁니다. 부모 사이가 좋아도 그 부모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을 때, 세상 사람은 모두 행복한데 나만 소외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자살을

결심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와 같은 분위기, 초, 중, 고교생들에게 주변의 모든 친구가 네 경쟁상대라고

가르치는 분위기에서, 자살하는 십대가 늘어나는 건 당연합니다. 부모에게서 찾기 힘든

또래 간의 공감과 우정으로 위로받긴커녕 자나깨나 경쟁에 시달리며, 키와 함께 자라는

외로움과 홀로 싸워야 하니까요. 지금과 같은 교육제도가 계속되는 한, 아무리 예방 활동을

강화해도 자살하는 청소년은 줄지 않을 것입니다. 

 

자살 욕구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에게, 주변이 어떻든, 어른들이 뭐라고 하든, 네 인생을

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어떤 아인 갖고 싶은 것을 다 갖는데, 왜 내겐 없는 게 많을까,

어떤 아인 성적이 자꾸 오르는데 왜 나는 성적이 오르지 않을까, 쟤네 부모는 사이가 좋은데

왜 우리 부모는 늘 싸울까... 그런 차이의 사소함을 알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주 뛰어난 십대조차 사소한 것의 사소함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고 싶을 땐, 죽고 싶게

만드는 요인이나 상황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자신이 아는 게 정말 옳은지, 자신이 아는 게 

전부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타살을 생각하는 사람보다 선량할 사람들일 겁니다. 그들이 자살

욕구를 넘어 살아남기 바랍니다. 자살 요구에 시달리는 십대들이 자신의 생일을 국가 기념일로

만들겠다는 포부에 기대어 죽어라 살아가기 바랍니다.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네가 아니었으면

내 인생은 꼭 그만큼 불충분했을 거야"라는 말을 듣게 되기 바랍니다.

 

<수, 내 동생으로 태어나주어 고마워. 말로 할 수 없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