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나무는 제 스승인데 그 중에서도 대나무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굵기가 정해진 채 태어난다는 것이 잔인하게도 느껴지지만 대나무는
그런 것에 마음 쓰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늘 속을 비우고 살아서일까요?
언젠가 가본 전남 담양 소쇄원의 대나무가 영 지워지지 않아 쓴 시가
지난달에 낸 책 <쉿,>에 실려 있습니다.
소쇄원 대나무들
소쇄원 마당은 가난한 집 아욱죽
손님 하나 올 때마다 물 한 그릇 더 부어
젓고 또 젓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굵어지지 못하는 대나무들
아무리 안 먹어도 가늘어지지 못하는 대나무들
생긴 대로 사는 거야 쇄 쇄 쇄
말 섞다 살 부비다 아욱죽 젓는 저 다리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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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담양의 대나무밭 농업이 유엔식량농업기구의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됐다고 합니다. 머리를 맑히우는 대나무가 몸까지 살려준다니,
그리고 그 아름다운 효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니 제 일 같이 기쁩니다.
아래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해준 경향신문 박영환 논설위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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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 곧기는 누가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 중 대나무를 노래한 부분이다. 사철 푸르고 곧개 뻗은 대나무는 군자의 품격과 기상을, 속이 텅 빈 줄기는 청렴을 상징한다. 문인들이 자주 그린 사군자(四君子)에 대나무가 들어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성철 스님은 “대나무가 가늘고 길면서도 모진 바람에 꺾이지 않는 것은 속이 비었고 마디가 있기 때문”이라며 대나무처럼 살라고 했다. 마음을 비우고 시련은 성장을 위한 마디로 생각하며 살라는 것이다.
대나무는 볏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세계적으로 1200여 종이 되는데 중국과 일본에 많이 분포하고 한국에서는 중부 이남에서 많이 자란다. 환경만 갖춰지면 하루에 1m나 자랄 정도로 성장이 빠르다. 자태도 고상하지만 뿌리부터 잎까지 버릴 게 없고 천가지 쓰임새가 있다. 항산화, 항균 작용이 좋아 요리에 다양하게 활용된다. 새순인 죽순은 최고의 식재료다. 지름 20㎝까지 자라는 맹종죽이 주로 쓰인다. 은은한 죽향을 즐길 수 있는 댓잎술, 댓잎차, 대통밥도 유명하다. 돗자리, 바구니, 참빗, 삿갓, 죽부인까지 다양한 세공품으로도 만들어진다. 플라스틱에 밀려 설자리를 잃었지만 친환경 제품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피톤치드 배출량이 편백숲의 두 배나 되는 대숲은 지친 도시인들을 위한 치유의 공간이다.
한국 최대의 대나무 서식지는 전남 담양이다. 한국 대숲의 34%가 이곳에 있다. 고려 때부터 심었으니 1000년 역사를 자랑한다. 300년 역사를 가진 죽물시장도 있다. 대나무로 저런 것도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이다. 일제 때는 죽물시장 덕에 담양이 개성 다음으로 세금이 많이 걷히는 곳이기도 했다.
담양의 대나무밭 농업이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됐다. 청산도의 구들장 논농업, 제주 밭담, 하동 차농업, 금산 인삼농업에 이은 국내 다섯번째 등재다. 댓잎 스치는 소리, 대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과 바람은 상상만 해도 상쾌하다. 빽빽한 대나무 숲에서 즐기는 죽림욕은 일상의 잡념과 피로를 날려준다. 최악의 폭염 예보를 뚫고 시원한 소식이 반갑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6282132035&code=990201#csidx1c24f26193bfe8b94ad80634b43a9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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