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 무엇이냐? 어떻게 쓴 칼럼이 좋은 칼럼이냐?
누군가 위와 같이 묻는다면 아래의 칼럼을 읽어보라 하겠습니다.
소위 글을 쓴다는 사람들이 자기검열 속에서 허우적대는 오늘,
발등 대신 '구두의 등을 긁는' 글들의 홍수 속에서
모처럼 칼럼다운 칼럼을 읽었습니다.
장대익 교수에게 감사합니다.
[장대익 칼럼]한국 개신교의 유통기한은 남아있을까?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의 저자가 무심히 던진 이 돌직구는 어디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 사회는 망상에 사로잡힌 일부 종교 집단들 때문에 국가적 대혼란에 빠졌다.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목사는 한국 개신교의 극보수 목소리를 내는 한기총의 대표로서 이번 광화문집회 사태의 주역이다. “중국 우한 바이러스로 우리 교회에 테러를 했다. 집회에 참석하면 성령의 불이 떨어져 있던 병도 낫는다”는 그의 발언은 상상력과 ‘근자감’의 결정판이다. 엎드려 사과한 신천지의 이만희씨가 작아 보일 지경이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어디 전 목사뿐인가?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발효와 행정명령에도 기어코 대면 예배를 강행한 교회가 엊그제 부산에만 270여곳이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집단감염 사태를 막아야 하는 이 엄중한 시국에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저항하는 그들은 과연 어떤 정신의 소유자들일까? 타자의 고통에 함께 몸부림쳤던 예수가 살아있다면 어디 편이었을까?
유치원을 비롯한 모든 단체가 방역의 끈을 다시 조여 매고 있는 상황인데 한국의 개신교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괴물은 갑자기 태어나지는 않는 법이다. 2007년 한 개신교 교회에서 파견한 아프가니스탄 단기 선교팀이 탈레반의 무장 세력에 납치돼 40일 만에 풀려난 악몽 같은 사건이 있었다. 탈레반은 결국 두 명을 살해했으며 한국 정부가 지불한 거액의 몸값을 챙기고 나머지를 풀어줬다. 그런데 전 국민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이 비극이 채 끝나기도 전, 그 교회의 담임목사는 두 청년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피를 뿌린 사건.”
하지만 이 깔끔한 정리는 ‘선교가 불법인 곳에 청년들을 파견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이들을 소름끼치게 했다. 지금은 익숙한 ‘개독교’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그때다. 타인(타집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해온 한국 개신교의 역사는 짧지 않다.
광화문집회에 참여한 사랑제일교회 신도들과 대면 예배를 고집하는 교인들의 행태도 같은 선상에 있다. 국가 전체에 피해를 주면서 자기 자신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예배는 생명이기에 목숨 걸고라도 대면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강변하는 교인들에게 ‘당신 목숨이나 거세요. 타인에게 피해주지 말고’라고 소리치고 싶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대체 왜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세상의 걱정거리가 되었을까? 자신의 목숨마저도 가벼이 여기면서 말이다.
2001년 미국 9·11테러 발생 직후,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한 일간지 칼럼에 다음과 같이 썼다. “만일 모든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한다고 치자. 그러면 자살테러 같은 만행은 지금보다 훨씬 더 줄어들 것이고, 어떻게든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들 것이다. 내세를 가르치는 종교는 사람들을 언제든 살인 무기로 만들 수 있는 정신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이 기고문으로 그는 수많은 종교인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종교 없는 세상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영웅이 되었다. 그의 문제작 <만들어진 신>은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종교가 ‘정신 바이러스’라는 주장은 비유를 넘어선다. 인간은 모방의 귀재로 진화했다. 인간의 독특성은 특출한 모방 능력에서 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에 도킨스는 유전적 방법이 아닌 모방을 통해 한 개체에서 다른 개체의 기억 속에 복제될 수 있는 문화 전달 단위를 ‘밈(meme)’이라 명명했다. 베스트셀러 서적, 영화, 광고, 구호 등이 모두 성공한 밈의 사례들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어디서 많이 본 문구 아닌가?
그렇다. 밈을 만든 것은 인간이지만 밈은 인간을 숙주처럼 이용해서 자신의 운반자로 인간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념이나 종교가 대표적 예다. 자유, 평등, 민주주의를 위해 군사정권과 싸우다 자발적으로 목숨을 버린 사람도 적지 않다. 자신의 종교적 이념을 마음에 새긴 채 자살테러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세상 어떤 종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유전자에 대항하는 밈을 가지고 있고 밈의 힘에 의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존재이다. 청소년이 왜 담배를 피우는지 아는가? 그들이 소비하는 것은 ‘담배 피우는 게 멋지다’라는 밈이다.
수많은 전국의 개신교인들이 광화문에 집결해 정권을 규탄했다. 마스크를 끼고 모였어도 시원찮을 판에 호기롭게 집단적으로 구호도 외치고 밀착해서 음식도 나눠 먹었다. 대절 버스를 타고 다시 고향으로 가서 일상에 복귀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이 엉망이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다른 동물도 이런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도킨스가 유신론적 종교를 박멸해야 할 정신 바이러스라고 규정하고 인류가 하루빨리 ‘신이라는 망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를 보살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복제만을 위해 인간 숙주를 무차별 공격할 뿐이다. 도킨스는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신념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물론 한국의 개신교와 교인들을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지 않은 그들이 자신의 밈에 사로잡혀 우리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창조론을 과학교과서에 집어넣으려 온갖 꼼수를 부리고, 상식적 인권이라 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며, 아직도 빨갱이 얘기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의 영역뿐만 아니라 가치의 영역에서도 꼰대가 된 지 너무 오래다. 역사가 증명해주는바, 지식과 가치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과연 한국 개신교의 유통기한은 남아있을까?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8250300065&code=990100#csidx48d071112a94d76807767021d8bac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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