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지는 듯 보였던 남북한 관계가 뒷걸음질을 치면서 걱정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대중 매체의 논객들이 쏟아내는 비슷비슷한 이야기들... 시끄러울 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소장이 쓴 글을 읽었습니다.
악화일로에 놓인 남북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전쟁기념관에서 찾으라는 겁니다.
통일부, 국방부, 외교부 등 정부 사람들과 국회의원들, 스스로 남북문제
전문가라 자처하는 사람들 모두 이 글을 읽고 이 글이 하라는 대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박 소장에게 감사하며 그의 글을 옮겨둡니다.
[
박래군 칼럼]전쟁기념관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전쟁 70주년을 앞두고 남북이 초긴장 상태에 있다. 2018년부터 조성되던 남북 간의 화해 무드는 옛일이 되어 버렸다. 남과 북의 정상들이 판문점에서 만난 일, 남의 대통령이 평양 체육관에서 북의 인민들 앞에서 연설을 하던 감격스러운 장면들과 평화를 향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선언들은 현실의 벽 앞에서 색 바랜 필름사진처럼 변해 버렸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이 지경이 된 데에는 남한 당국의 한·미동맹 우선 기조가 한몫 톡톡히 했다. 북한 당국이 콕 집어서 지적한 것을 부정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한·미 워킹그룹이라는 실무협의 기구에서는 인도적 지원조차 가로막았고, 남한의 대북 행보는 번번이 좌절되었다. 남한 당국은 한·미 간의 실무협의조차 넘지 못하면서 4·27 판문점선언 등에서 약속한 대북 삐라 살포 금지마저 지키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이런 데에는 한국전쟁 발발 70년, 정전협정 67년이 다 되도록 냉전 이데올로기를 청산하지 못한 탓이 큰 것 같다. 한국전쟁으로 굳어진 냉전의 분단 구도 아래에서 미국 눈치 보기에만 급급했던 게 오늘의 이 사태를 나오게 만들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남과 북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후 긴장과 대결의 국면에서 평화와 대화의 국면으로 아주 더디지만 발걸음을 해왔음에도 최소한 한국의 군부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그들이 운영하는 용산의 전쟁기념관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정전협정조차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완강하게 무력통일론에 기초한 대북 대결의식을 강조하는 전쟁기념관을 그대로 둔 채 겉으로만 국제적인 변화와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 평화를 지향하는 것 같은 시늉을 해본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전쟁기념관에 가면 절로 생긴다. 정 믿기 어려우면 전쟁기념관에 가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국방부 바로 앞에 있는 거대한 그리스 신전을 닮은 전쟁기념관은 매년 2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고 있고, 개관 15주년을 맞은 지난해 누적 관람객 3000만명을 돌파했다, 매년 이곳을 찾는 방문객 중 70만명은 청소년이다. 전국의 이러저러한 전시관이나 박물관들보다 월등히 많은 인원이 이곳을 찾는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옥외 무기 전시장이다. 한국전쟁 때의 탱크, 전투기, 폭격기들과 그 뒤에 발전된 각종 무기들 위에서 어린이들이 천진무구하게 오르내리면서 뛰어논다. 그곳에서 가족 기념촬영도 한다. 저 병기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시설물과 마을들을 파괴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안으로 들어가면 한반도의 전쟁사를 선사시대부터 설명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한국전쟁과 관련한 전시다. 전시 내용 전체를 요약하자면 한마디로 ‘배제와 왜곡’이다. 진실은커녕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이 있을까? 전쟁의 비극은 모두 북한 인민군의 책임으로 돌려져 있다. 악의 군대와 맞서는 자유의 군대, 한국군과 유엔군을 찬양하는 내용 일변도다. 한국군이 저질렀던 민간인 학살 그런 것은 아예 지워 버렸다. 심지어는 국가가 나서서 진상규명을 해온 제주 4·3사건도 좌익 무장세력의 폭동을 진압한 것으로 왜곡되어 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결과도, 법원의 판결 내용도, 대통령들이나 심지어는 국방장관의 사과 발언도 여기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 시기의 냉전적 시각에 머물러 있다.
해외파병관에 들어가면, 한국전쟁 시기에 미군이 저질렀던 폭격에 의한 참상과 학살은 제쳐둔 채 오로지 한국의 재건을 위해서 미국이 전쟁 중에도 기꺼이 도움을 준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은 오로지 베트남인들을 위한 봉사와 헌신을 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는 것”이 한국군의 원칙이었다는 설명에는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전쟁기념사업회법 제1조는 “이 법은 전쟁기념사업회를 설립하여 전쟁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존하고, 전쟁의 교훈을 통하여 전쟁 예방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 전쟁기념사업회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 노력의 결과가 지금의 전쟁기념관의 전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즉 전쟁기념사업회와 전쟁기념관은 법의 목적을 현저히 위반하는 불법을 버젓이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26년 동안 그대로다.
내가 대표로 있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를 비롯한 평화시민단체들은 문제투성이의 전쟁기념관을 바꾸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25일부터 3일 동안 전쟁기념관이 전시하지 않는 ‘배제와 왜곡’의 야외 전시를 한다. 그리고 시민사회가 연대해서 정전 상태를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자는 국제 캠페인을 시작한다. 3년 동안 세계인 1억명의 서명을 받자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만큼 시민사회는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평화로 가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지금의 위태로운 상황에서 얼마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제 전쟁기념사업회도 전쟁기념관도 법의 목적에 맞게 바뀌어야 할 때다. 여전히 70년 전 냉전시대의 안보관을 유지, 강화하려는 구시대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평화통일을 위한 진정성을 세계인들로부터 의심받지 않을 것이다. 평화로 가는 길은 우리 내부의 구시대적인 인식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할 때 비로소 열릴 것 같다. 전쟁기념관, 정말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6230300015&code=990100#csidx4911d669cb66bc49e254f10cb97ef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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