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옥 선생님,
오래 뵙지 못했습니다.
국회의원 당선자인 윤미향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로 인해
세상 곳곳이 시끄러운데, 선생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시네요.
올해 만 아흔다섯, 침묵으로 말씀하시는가, 혼자 생각합니다.
1991년 선생님과 김문숙(93) 한국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회장님이 함께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를 시작하셨다는
인터뷰 기사를 보니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대학 시절 처음 본 선생님은 겨울 소나무 같아 감히 범접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의 '영문학사'를 들을 수도 있었지만 김영무 선생님의 '영문학사'를 들은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 가슴 속 뜨거운 사랑도 읽어내지 못했으니
저는 왜 그리 어리석었을까요?
학교를 졸업하고 한참 후 선생님이 정대협 대표로 활동하시는 것을 보며
일찌기 선생님을 알아뵙지 못한 어리석음을 반성하고 부끄러워했으나
감히 찾아뵙지는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교수로서 그러셨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사랑과 헌신으로
정신대 피해자 할머님들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의 웹진 '결'에
소개된 선생님의 이력을 보면 선생님이 그분들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찍부터 ‘위안부’피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1980년부터 ‘위안부’ 피해자를 찾아다니며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1988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주최 '국제 관광문화와 여성(일명 기생관광) 세미나'에서
정신대 답사 보고를 하고 1990년 한겨레신문에 정신대 취재기를 연재하면서 이 문제가 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결성, 공동 대표를 역임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최초로 세상에 알리고 그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 온
선구자. 저서로 『平和を希求して : 「慰安婦」被害者の尊嚴回復へのあゆみ』 『朝鮮人女性がみに 「慰安婦問題」 : 明日をともに創るために』 등이 있다."
그런데 선생님이 그토록 열심히 키워낸 정대협이 불미스러운 논란으로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니 얼마나 분한지 모르겠습니다. 제 마음이 이럴 때 선생님 마음은 어떠실까...
가슴이 아픕니다.
김 회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수요집회에 모금통을 갖다 놓은 사람이 윤 당선인"이라며 "윤미향은 나랑 윤(정옥) 선배 밑에서 심부름하던 간사였는데 대표 된 뒤로부터는 할머니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각종 모금 사업을 벌였다"며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천천히 다 들여다봐야 한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윤미향이 대표가 된 이후 정대협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 할머니를 앞세워 돈벌이하는 단체가 돼버렸다"고도 하셨다니 선생님에게 침묵 아닌 선택이 있을까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지만 선생님, 파도와 물거품만이 보일 때에도 우리는 그 아래 여전한 깊이의 바다가 있음을 압니다.
선생님, 윤정옥 선생님,
부디 너무 슬퍼마시고 옥체를 보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