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천국과 지옥의 같은 점, 다른 점(2020년 4월 25일)

divicom 2020. 4. 25. 11:22

가끔 '이 나라 사람이어서 자랑스럽다, 이 나라 사람이어서 부끄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건 대개 동료 한국인들입니다.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신부는 

제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느끼게 합니다.


그가 오늘 경향신문의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 2020' 칼럼에 천국과 지옥에 대해

쓴 것을 보면 그의 생각이 저의 생각과 어찌 그리 같은지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칼럼이 신문의 한 면 전체를 차지하는 길이라 많이 줄여서 옮겨둡니다.

기사 원문은 맨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의 첫머리와 중간에 나타나는 말없음표(...)는 그 부분의 글을 들어냈음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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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은 지옥과 연옥,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발견된다. 그렇다면 왜 종교는 천국과 지옥에 관해 이야기를 할까? 살아있는 인간 가운데 그 누구도 천국이나 지옥을 보거나 가본 사람은 없다. 물론 영적이고 신비스러운 현상에 의해 천국과 지옥을 봤다는 사람은 있지만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종교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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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왜 이다지도 모순투성인지 그런 고민과 탄식의 끝에 부조리하고 불의한 인간사를 풀 길이 없고 설명할 수 없었던 인간에게 천국과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꼭 필요하지 않았을까.

만일 죽음 이후의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너무나 불공평한 현실 속에서 무력감만 느끼다가 허무하게 죽게 될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현실은 이렇지만 내가 착하고 정직하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 ‘악하게 사는 사람은 지금은 저렇게 호의호식해도 하늘의 심판으로 지옥에 갈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삶에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현실의 인간 존재에겐 천국과 지옥은 너무나 필요한 이야기이고, 하늘나라는 위로와 희망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실제 이런 이야기는 적지 않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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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영향을 받아 어린아이와 같이 무죄한 이가 가는 림보, 육욕, 폭식, 탐욕, 인색, 낭비, 분노, 이단, 폭력, 사기와 배신으로 나누어 상세하게 지옥을 그려낸다. 그리고 지옥과 마찬가지로 천국에 들어가기에 앞서 영혼의 정화 장소인 연옥과 천국에 대해서도 계층을 나누어 상세히 묘사한다. 이것은 작가의 위대한 상상력과 이전 스콜라 철학과 신학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천국과 연옥, 지옥의 모습은 단테가 생각했던 것처럼 복잡하지도, 위협적이지도 않다. 천국은 마냥 좋고 지옥이라고 마냥 나쁘지도 않다. 내가 생각하는 천국과 지옥은 외부적인 환경과 생활조건도 같을 것이다. 지옥에서도 천국과 같은 음식과 옷이 제공되고 거주 환경도 천국과 지옥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모든 환경은 큰 차이 없이 주어지고 그다음은 우리가 상상하거나 알고 있는 대로다.

천국과 지옥의 숟가락은 아주 길어서 밥을 떠먹기가 힘든데, 지옥에서는 혼자 그 긴 숟가락을 들고 자기 음식을 떠먹으려고 하고, 천국에서는 자기 입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앞, 혹은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떠먹여주려고 하는 곳이다. 지옥이나 천국이나 같은 음식이 놓여 있지만, 지옥에서는 자기 입에만 음식을 넣으려고 해서 오히려 아무 음식도 먹을 수 없고, 천국에서는 똑같은 음식을 자기 입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에 먼저 넣어줌으로써 나도 배불리 먹는다.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단 하나의 차이는 태도의 차이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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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거리를 걷다보면 간혹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푯말을 들고 서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을 표현하려고 한 것 같다. 수많은 종교가 내세관을 가지고 있지만 천국과 지옥은 죽음 다음의 세계에 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가는 공간이 아닐 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어려움을 겪으며 인간은 이미 이곳에서 지금의 현실로도 충분히 천국이나 지옥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경험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 존재의 태도에서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가 스스로 ‘헬조선’이라고 말했던 배경에는 각자도생의 현실이 그 바탕에 있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강타하는 가운데 각 나라가 이 위기를 헤쳐 나가는 방식을 바라보며, 국가나 사회가 나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고 돌봐준다는 그 느낌이 어떤 태도에서 비롯되는지, 그래서 역설적으로 어떤 태도가 한 사회를 지옥 같은 상황으로 만드는지 경험하고 있다. 해외 곳곳에서 교민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하고 우리 땅에 도착하면서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를 보며 국민들은 해외로부터 새로운 감염원이 생기는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고국으로 돌아온 동포를 따뜻한 마음으로 환영한다. 여기에서 나는 긴 숟가락으로 앞에 앉은 이에게 밥을 떠먹여주는 천국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 안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나라를 돕는 모습을 통해 선명해지고, 도움을 받은 나라가 또 다른 나라를 돕는 상황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기대하는 이유다.

재난의 상황이 길어지고, 얼마나 더 길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모두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빠르게 받아들이고 현재의 상황에 최선의 마음으로 적응하려는 성숙한 의식 하나하나가 모여 바이러스를 이기는 새로운 치유력이 되고 있다. 질병의 대유행 속에서도 차분하고 질서 있게 치러낸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고난 속에서 더욱 힘을 합치고 강해지는 것이 본래 우리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이 경이로운 사회의 중심에서 우리는 또 다른 출발선에 서있다.

‘일 파라디소 델라 코레아. Il Paradiso della Corea’

‘천국 한국’이 되기 위해서 지금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필자 한동일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 2020]코로나의 시간…현실의 천국과 지옥 가르는 것은 인간 존재의 태도다

한국인 최초·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서강대학교에서 진행한 라틴어 강의는 타 학교생 및 외부인까지 청강하러 찾아오는 최고의 명강의로 평가받은 바 있다. <그래도 꿈꿀 권리> <라틴어 수업> <법으로 읽는 유럽사> <로마법 수업> <카르페 라틴어 한국어 사전> 등을 썼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4241635005&code=940100#csidx206b6f88f856a4bae5914ccc5f188d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