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1일에 이 블로그에 올렸던 아래의 글을 오늘 다시 올리는 이유는
그 글이 포털사이트 '다음'에 의해 '임시조치'되었기 때문입니다.
'임시조치'된 글은 읽을 수가 없습니다.
저로선 왜 이 글을 읽을 수 없게 만든 것인지, 누가 '임시조치'를 신청/요구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글은 훌륭한 배우 김영애 씨를 기리기 위해 쓴 것이니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엊그제 영화 '변호사' 에서 본 김영애 씨... 부디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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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름다운 동행 한 사람이 우리 곁에서 영영 떠나갔습니다. 바로 배우 김영애 씨입니다. 그는 지난 9일 췌장암 합병증으로 투병하다 숨졌고, 오늘 경기도 분당의 메모리얼파크에서 영면에 들었습니다.
'김영애' 라는 배우를 떠올리면 어떤 역할을 할 때나 그에게서 풍기던 품격이 생각납니다. 그가 겨우 66세에 저 세상으로 간 것도, 그처럼 격조 있는 사람이 머물기엔 이 세상이 너무 천박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1971년에 MBC 공채 탤런트 3기로 데뷔해, 수없이 많은 작품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그는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연기만 하기 위해' 2001년 황토팩을 생산하는 참토원을 창업해 사업가로서 승승장구하며 결혼도 했으나, 2007년 이영돈 피디의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에서 그의 회사가 생산하는 황토팩이 중금속에 오염됐다는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사업이 급격히 기울었다고 합니다.
훗날 법원에서 그 회사 제품에 유해성이 없다고 판결했으나 회사는 회복되지 못했고 남편과도 이혼했다고 하니,
그가 암에 걸린 게 바로 그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지난 2월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영돈 피디가 밉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고, '용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나도 살면서 부끄러운 일을 많이 했다...지금은 어떤 미운 사람도 가슴에 남아 있지 않다. 누굴 원망하는 건 결국 나를 괴롭히는 건데, 그 시기를 그냥 나를 위해서 사는 게 낫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영돈 피디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건 다만 이 나라
언론이 선정적이고 무책임하다는 것, 그리고 김영애 씨는 우리의 가슴 속에 그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오래 남아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래 사진은 경향신문 인터넷판에 실린 것으로 사진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관련 기사와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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