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엄마를 닮는 걸까요?
엄마가 낳지 않은 딸도 마찬가지일까요?
엄마가 비굴을 모르니 딸도 비굴하지 않은 걸까요?
엄마에게 낯선 세상은 딸에게도 낯선 걸까요?
딸은 가끔 엄마에게 얘기합니다.
세상이 이상하다고,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비굴하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엄마는 가슴이 아픕니다, 세상을 바꿔줄 수 없으니까요.
아침을 먹다가 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로 출근하던 딸이 길에서 전화를 한 겁니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끝없는 물음표가 되어
딸을 괴롭히나 봅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미안했습니다.
세상은 계속 그렇게 악화일로를 걸을 테니,
실력은 없되 혀와 눈을 잘 돌리는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갖게 될 테니, 할 말이 없었습니다.
통화는 길고 통화의 말미, 딸은 짐짓 명랑한 척했지만
엄마는 마음이 아픕니다.
딸님, 부디 딸님과 그들 사이에 '감당할 만한 거리'를
유지해주세요. 그때의 '감당할 만한 거리'는 비굴도 냉담도 아니에요.
살기 위한 자구책이고 정당방위에요.
딸님, 일터는 일터, 일터는 삶터가 아님을 기억하세요!
지금 딸님을 괴롭히는 일들...저 창밖 안개처럼 사라진다는 걸 잊지 마세요.
감당할 만한 거리
멀리서 보는 단풍은 아름답다.
욕심을 부려 가까이 다가가
잎잎을 보면
상하고 찢긴 모습을
만날 뿐이다.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
단풍든 잎잎의 상하고 찢긴 모습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가까이 다가가는 일에
겁을 낸다.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한다.
감당할 만한 거리에 서있으려고 한다.
-- 벅상천 시집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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