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홍제천의 흉물들, 그리고 과대포장 대한민국(2018년 10월 1일)

divicom 2018. 10. 1. 07:57

시 읽는 계절 시월의 첫 아침 아메리칸 블루 두 송이가 피었습니다.

저 꽃의 뿌리엔 얼마나 많은 잉크가 고여 있기에 

저렇게 어여쁜 잉크 빛깔 꽃을 피워내는 걸까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없지만 아메리칸 블루가 있어서 행복합니다.

사람들 때문에 열이 오를 때면 늘 꽃과 나무의 위로를 받으니저만 그런 걸까요?

 

추석 직전 명절 선물을 풀다 보면 부화가 치밀곤 했습니다.

선물의 과대포장 때문이었습니다.

정관장 홍삼제품은 과대포장의 대표적 예입니다.

제 친구 하나는 정관장 '화애락'을 선물받았는데

과대포장 때문에 먹기도 싫어졌다고 했습니다.

제 마음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알약을 몇 개씩 반짝이는 플라스틱(?)판에 박아 포장하고 

그것들을 다시 상자에 넣고 그 상자들을 다시 상자에 넣는 식인데 상자는 두껍고 무겁고..

다 버려야 할 상자들이었습니다. 시간이 나면 정관장 불매운동을 벌이고 싶습니다.

거문도 쑥으로 만들었다는 떡 선물도 쯧쯧 혀를 차게 했습니다.

쑥개떡, 쑥송편 모두 개별적으로 비닐 포장한 것을 다시 좀 더 큰 비닐에 넣고

다시 그것을 좀 더 큰 비닐에 넣는 식이었습니다.

정관장의 플라스틱 판과 상자들, 거문도 떡의 비닐들...

이런 과대포장이 지난 여름 섭씨 40도를 넘나들게 한 지구온난화를 촉진하겠지요.

 

어젠 떠나가는 9월의 향기를 맡으며 산책하다가 또 혀를 차고 말았습니다.

홍제천 물가에 끔찍한 오브제들이 설치되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인물상들, 천박한 장식물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 구청장 잘못 뽑았다!'였습니다.

서대문구청장 문석진 씨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세 번 내리 구청장에 당선됐는데

홍제천을 저렇게 망치고 있는 겁니다.

문 후보가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 나은 후보가 없어서 

'차악을 선택하는 마음'으로  문 후보에게 표를 주었는데... 

 

아니 문석진 구청장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 모두 저런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말은 다가오는데 예산은 남아 있고 올해 예산을 다 쓰지 않으면

내년 예산이 줄어들 테니까요.

 

세계지도에서 보면 손가락 한마디도 안 되는 좁은 땅을 갈기갈기 나눠

지방자치를 하면서 국토는 '졸부들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이 작은 나라에서 열리는 축제가 헤아릴 수 없게 많고

곳곳에 불필요한 구조물들과 흉물스런 조형물들이 즐비합니다.

국민이 국민의 의무를 하느라 낸 세금으로

'국토의 과대포장'이 진행되는 것이지요.

 

창밖은 시월인데 제 마음은 열기 가득했던 8월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아메리칸 블루를 바라봅니다.

아름다운 것, 진실한 것은 굳이 과대포장이 필요없습니다.

고맙다,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