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을 많이 소장하진 못했지만 예술 감상을 좋아합니다.
음악, 문학, 미술, 무용, 오페라, 연극, 사진... 두루 좋아합니다.
하기 힘든 일을 해낸 후 저 자신에게 음반이나 화집을 선물할 때도 있습니다.
최근에 우연히 안종현 사진집 <보통>을 보았습니다.
토탈뮤지엄프레스에서 만든 책에 작가가 군대 시절에 찍은 사진들과
집창촌에서 찍은 사진들 등 다양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사진집은 잘 지은 집이나 아름다운 카페 같았습니다.
책의 모양도 좋고 종이도 좋고 사진들도 좋았습니다.
아름답게 표현할 필요가 없는 풍경을 아름답게 표현하려 한듯한 작품이
있어 안타까웠지만, 젊은 작가이니 작업을 계속 하며 스스로 극복하겠지요.
실망은 글에서 왔습니다.
멋진 집이나 카페의 사람들이 꼭 멋지지는 않은 것처럼
책에 수록된 글이 사진집의 외양과 맞지 않았던 것이지요.
우리말로 쓴 글에는 '집창촌'을 '집장촌'으로 표기하는 등 교열 문제가 있었는데
그나마 영어 번역문에 비하면 약과였습니다.
평생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며 밥벌이를 하고 지금도 번역을 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너무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진 않을 겁니다. 제가 지적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성실하기만 하면
피할 수 있는 문제이니까요. 예를 들면 23일이 '23th'로 번역돼 있었는데
번역자가 '23rd'로 해야 한다는 걸 모를 리는 없겠지요.
외국어를 전공했다거나 외국어로 쓰인 글을 읽을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번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은 통번역대학원을 나온 사람들이 번역에 뛰어드는 일이 많은데
통번역대학윈 2년을 다녔다고 번역을 잘 하는 것도 아닙니다.
번역을 잘하려면 무엇보다 독서량이 많아야 하고
자신이 번역하려는 텍스트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 두 가지가 있어야 어떻게 하면 글 쓴 사람의 마음이
잘 전달되게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의도했으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말까지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든 잘못하는 사람들은 대개 네 부류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실력이 없는 사람, 불성실한 사람, 실력이 없으면서 불성실한 사람,
대충 해놓고 누가 잘못을 지적하면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렇게 따지느냐'며
지적한 사람을 속좁은 사람으로 모는 사람.
사진작가 안종현 씨에게 이 책은 매우 중요한 책일 겁니다.
한 번 만들어진 책은 사라지지 않으니 <보통>은 늘 안종현 씨를
따라다닐 겁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토탈뮤지엄프레스가 부디 다시는 이 책에 저지른 실수와 같은 실수를
다른 책에 저지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속모습이 겉모습을 배반하지 않는 화집과 사진집을
만들어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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