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합니다. 무엇을 할 기회일까요?
혹시 부자가 될 기회일까요?
제 인생에도 세 번쯤 부자가 될 기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 번 다 놓쳐서 부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기회는 셋방을 살다가 처음으로 집을 살 때였습니다.
은행빚을 잔뜩 지고 사는 거였지만 강남에 살 수 있었는데
부모님 가까운 데서 살아야 할 것 같아 그만두었습니다.
두 번째 기회는 살던 집을 떠나 이사할 때였습니다.
동네가 복잡해지며 공기가 나빠지고 두통이 심해져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강남의 아파트를 보러갔지만 고층아파트 군을 보니 두통이 심해져 포기했습니다.
강남 아파트로 가는 대신 평창동의 빌라로 갔습니다.
그 빌라에서 18년을 살고 현재의 집으로 이사온 것도 공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적했던 평창동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집이 늘어나며 공기가 나빠지니
또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평창동 빌라로 갈 때는 그 빌라와 강남의 비슷한 크기 아파트 값이 비슷했는데
18년 동안 큰 격차가 생겼습니다. 강남의 아파트는 열 배 이상 뛰었지안 평창동 빌라는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 빌라를 팔고 공기 좋은 곳으로 왔는데
제가 팔고난 후 평창동 집값에도 날개가 달려 앞자리 수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부동산을 아는 친구들은 모두 그 빌라를 팔지 말았어야 한다고 하는데
집은 한 채만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로선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자가 될 기회를 세 번이나 놓쳤으니 가족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후회하진 않습니다. 오늘 조선일보 인터넷판엔 왜 제가 후회하지 않는지 저 대신
얘기한 사람이 있습니다.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자 동아대석좌교수이고
건축사무소 이로재 대표인 승효상(65세) 씨입니다.
아래에 그를 인터뷰한 기사를 조금 줄여 옮겨둡니다.
문단 사이 말없음표(...)는 문단이 생략되었음을 뜻합니다.
기사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기사 원문과 승효상 씨의 사진을 비롯한
관련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집값은 존재값.. 졸지에 부자되면 삶도 버블될 것" 건축가 승효상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입력 2018.10.27. 08:01건축가 승효상을 만났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이 주최하는 리더의 지식 포럼 CQ에서였다. 용산의 한글박물관은 그의 유명한 강연인 ‘지문(地文 땅의 모양-landscript)'을 듣기 위해 모인 각국의 대사와 인플루언서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승효상은 특유의 흐트러진 은발에 온화한 미소를 띤 채 ‘우리는 어디에 어떤 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요는 이렇다. 서양 건축이 솟아오른 마천루(Skyscraper)로 오만함을 과시해왔다면, 우리 조상들은 집을 땅과의 조화로운 관계로(Landscript)로 파악했다. 서양의 도시계획이 평지에 세워진 위계형 마스터플랜이라면, 우리 조상들은 산과 계곡의 위에 집을 슬쩍 얹은 형태로 땅의 모양을 해치지 않고 살아왔다. 시를 짓고, 밥을 짓고, 옷을 짓고 농사를 짓듯이 집을 짓고 어울려 살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서양에서조차 ‘비윤리적이며 갈등을 부추긴다'며 폐기된 마스터플랜 식 도시 계획이 이 땅에 마구잡이로 이식됐다. 땅과 도로와 집에 매겨진 등급은 인간의 삶을 헤집고 갈등의 뿌리를 드러냈다. 그렇게 땅의 무늬를 없애고 지어진 ‘터무니 없는 집', 역사를 밀어버린 불구의 땅에서 불안한 삶이 시작됐다. 승효상은 우리가 불행하게 느낀다면 그것은 잘못된 도시 계획의 결과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 대학로에 있는 그의 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齋)를 찾았다. 2015년부터 2년간 서울시 총괄 건축가로, 지금은 대통령 직속 건축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 활동 중인 그에게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였다.
전 국토가 부동산 광풍으로 몸살을 앓다 숨죽인 지금, 집은 우리에게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살 수 있는가. 승효상은 "집값은 자기의 존재값"이라며 "집을 사고파는 것은 자기 존재를 사고파는 것"이기에 "터무니없이 비싼 집은 버블이고, 내 존재도 버블이 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있는 유럽식 임대주택이라 덧붙이며.
건물공동체(urbs)가 아닌 사회공동체(civitas)로서의 삶. 달동네를 미학의 원형으로 둔 승효상의 ‘빈자의 건축 철학'은 6·25전쟁 시절 그가 머물던 부산 피난민촌에서 태동해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을 거쳐 완성되었다.
-‘지문’이라는 단어가 신선합니다. 선생이 처음 만든 신조어지요?
"그렇습니다. 위키피디아에도 승효상이 처음 만들었다고 돼 있어요(웃음). 지문은 땅의 무늬, 터의 무늬에요. 우리말에 ‘터무니없다'는 말이 있는데 근본이나 원리가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터 무늬가 지워진 곳에 살면 터무니없이 살게 되죠(웃음). 그런데 최근에 정도전도 이 말을 썼다는 걸 알았어요."
-한양도성을 설계한 정도전 말입니까?
"네. 제가 정도전을 참 좋아해요. 그가 쓴 글에 지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거기선 천지인, 운율을 맞추기 위해 썼더군요. 정도전은 훌륭한 건축가입니다. 그는 조선의 수도로 한양 땅을 고르고 도시의 윤곽을 만들었어요. 건물의 이름도 지었지요. 어떤 건물에 이름을 붙인다는 건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인데, 정도전이 경복궁 궁궐에 붙인 이름을 보면 그 사상의 깊이와 높이에 머리가 아득해지지요."
...
-서울을 위에서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속상한 것 천지입니다. 잘못 가꾸어진 것들이 많아요. 하지만 서울은 희망이 있어요. 인구 1천만 명의 메가시티는 전 세계에서 20개 정도인데, 서울은 그 중 유일하게 산이 있는 도시예요. 건축도 수명이 다하면 언젠가는 없어지는데, 산은 없앨 수 없죠. 언젠가는 원점을 회복할 도시예요. 아무리 망가져도 돌아갈 원점이 있는 거죠. 그게 희망입니다. 세계의 다른 도시들은 다 평지에 지어졌어요. 그래서 건물이 없어지면 어디로 갈지 몰라 길을 잃지요."
-도시의 산밑에 일군 ‘달동네'를 중심으로 공동체와 빈자의 미학을 역설하셨습니다. 그러나 땅과 집에 대한 한국인의 욕망과 갈등은 이제 일상의 투쟁이 됐지요.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나라 GNP가 전 세계 27위입니다. 그런데 행복 지수는 80위예요. 보통 GNP가 10위면 그 도시의 행복지수도 10위 권 안에 드는데, 이상한 경우에요. 우리는 돈만 있지 행복하지 못합니다. 이 불균형이 도시 구조에 있습니다."
-도시 구조가 한국인의 불행을 만들었다?
"처칠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고. 부부가 같은 공간에 살면 닮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사는 공간을 닮게 되어 있지요.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살기 힘들다’는 소리를 들었고, 정권은 오직 ‘경제 경제 경제'를 소리높여 외쳤어요. 이젠 잘 살게 됐습니다. 행복을 위해 돈을 벌었지만, 이젠 행복하지도 않으면서도 계속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하죠. 진짜 행복이 뭔지,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공공의 영역에서 제안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시민들은 더 깨끗하고 설비가 좋은 집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선생은 금호동 달동네에서 건축의 이상을 봤지만, 이제 그곳은 ‘호재’를 거쳐 다 무슨 무슨 힐로 재개발됐지요. 재건축통제와 선생이 주도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도 공격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부동산 증식을 막고 돈을 못 벌게 해서 화가 난 거죠. 그런데 그런 욕망은 하루 빨리 버리는 게 좋습니다. 부동산으로 돈 버는 것만큼 허망한 게 없습니다. 그건 국가 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돼요. 생산을 합니까, 번식을 합니까. 피땀 흘려 번 돈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불로소득은 공공이 거둬가는 게 마땅합니다. 안 그러면 타인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 막혀요. 파편화 되죠.
모로코의 마라케시나 페즈를 보면 1200년 됐는데도 도시가 하나의 유기체 같습니다. 열 개 내외의 집과 시설이 모여 하나의 군락을 이루고 도시 전체가 연결되어 있어요. 행복하게 살려면 그렇게 집이 나의 존재의 확장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실제로 집에 부동산 개념이 들어온 건 얼마 안 됐어요. 박정희 정권 이후부터니까요."
-하지만 지금 전 세계는 부동산 광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유럽 한가운데 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9년째 삶의 질이 세계 1위에요. 그곳 사람들은 67% 임대 주택에서 살죠. 집이 소유나 임대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북유럽도 그렇죠. 알고 보면 뉴욕, 런던,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 몇 %만 부동산으로 들끓어요. 몹시 나쁜 예죠."
-서울이 그 나쁜 예 중 하나가 된 건 왜입니까?
"옛날 주택이 모자랐던 시절에 주택 공급을 건설회사에 일임하고 특혜를 줬어요. 건설회사가 만든 게 아파트 단지예요. 담을 치고 게이트를 만들어 도시의 섬을 세웠죠. 그 안의 도로조차 사유지예요. 그 섬이 성이 되어 폐쇄적 공동체가 되고 다른 성보다 값을 올리려고 적대적 공동체가 됩니다. 주택공사가 그 적대적 공동체를 타파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 시절에 공공기관도 돈 벌어야 된다고 하니, LH공사조차 싼값에 공급하고 손해봐야 한다는 본분을 잊고 민간보다 더 상업적 이익을 추구했어요. 무엇보다 선분양제가 나쁜 역할을 했지요.’
-선분양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제도지요.
"그러니 바꿔야죠. 건설회사의 이윤과 로비 등 오랜 습관이라 단번에 바꾸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후분양제가 되면 집이 공급자 마음대로 안 돼요. 소비자가 ‘안 사!’해버리면 끝이죠. 판이 바뀌는 거예요. 주택에 관한 생각이 바뀌면 전체 행복의 판도가 바뀝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주택의 판도는 어떻게 바뀌고 있습니까?
"예컨대 1인 가구가 많이 늘어났는데 건설사는 2베드, 3베드 집만 공급하고 있어요. 돈 있는 1인 여성이나 남성을 위한 집도 지어야죠. 반면 돈 없는 청년들은 집 안에 부엌, 욕실 다 가질 필요 없어요. 공유하면 되죠. 이들이 살 수 있도록 공유 주택과 더 나아가 공유 마을을 만들어줘야 해요. 그래야 개인도 살고 공동체도 살 수 있어요. 시대가 바뀌면 그에 맞는 공급이 따라줘야 해요. 예지력 있는 건축가가 선도적으로 치고 나가야 하는데, 지금은 시장의 욕구를 따라만 가고 있죠. 이런 아우성은 아무리 맞춰줘도 끝내 만족을 못 해요."
...
-선생은 아파트를 한 번도 설계한 적이 없지요?
"없어요. 지금의 관습대로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중국에서는 아파트를 설계했습니다. 중국 건설 시장의 주체는 건설사가 아니에요. 디벨로퍼(부동산개발업자)가 땅을 불하받으면 좋은 건축가를 초빙하고, 좋은 건축가의 설계 힘으로 규격화되지 않은 공동주택을 공급합니다. 그런 아파트는 건축가 이름으로 팔려요. 건설사 이름이 아니라.
반면 우리나라 아파트는 어떤가요? 공동주택이라고는 하지만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지 않아요. 붙어살 뿐 모여 살지 않죠. 주차장에서 집으로 직행하는 집은 옆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몰라요. 죽어도 며칠 만에 발견되죠. 그건 집합 주택이지 공동 주택은 아닙니다. 커뮤니티센터는 법규상 만들어놓기만 할 뿐, 공동체 인식이 없으니 허울뿐이죠."
...
-도시재생 한다고 골목마다 그려진 벽화는 어떻게 봐야 하나요?
"벽화는 가시적인 겁니다. 재생에 필요한 사람은 미술가가 아니라 건축가죠. 바꿔야 할 것은 공간이에요. 집 한 채를 허물어서 마당이 있는 흥미로운 공간을 만들면 아이들이 모이고 사람이 모여요. 콜롬비아의 메데인이라는 도시도 건축을 공부한 시장이 가난한 슬럼가에 작은 도서관, 공연장, 학교를 지어서 범죄율을 80%나 줄였어요.
다만 재생은 빠른 시간 안에 효과를 보기 힘들어요. 콜롬비아도 10년 걸렸어요. 기다려야죠. 지금 건축가들이 창신동 등 재생 지역에 파견돼서 주민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어요. 과정이 중요하니 느려도 기다려야 합니다."
-을지로나 서촌, 익선동, 해방촌 등에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어떻게 보십니까? 터의 무늬가 보존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생기지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말이 마냥 나쁜 건 아니에요. 환경이 젠틀해진다는 거죠. 원주민이 쫓겨나는 문제는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오른 임대료를 공공으로 환수하면, 오를 이유도 없어집니다. 한편으론 부작용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해서 환경을 바꾸면 도시 전체가 점점 젠틀해지는 겁니다. 도시는 꿈틀대는 생명체예요. 가만있으면 죽죠.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도 전체적으로 도시 전망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
-대표적으로 청와대나 국회의사당을 허위의식이 낀 나쁜 형태의 건축물로 지적하셨는데요.
"맞습니다. 과시적이죠. 국회의사당은 그 기둥과 지붕이 대표적이고요. 청와대는 내부 구조가 형편없습니다. 관저에는 빛도 잘 안 들고 환기도 안 되죠. 그런 건물에 거주하면 삶의 질이 나빠져요. 생활의 질이 나빠지면 불행해지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축주에게 "이건 당신 집이 아니다. 사용권은 당신에게 있지만, 소유권은 시민과 사회에 있다"고 일갈한다고 들었습니다. 수긍을 하던가요?
"(웃으며)초창기엔 상처받고 헤어지는 경우가 많았죠. 그다음부터는 건축주는 내가 선택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온다고 다 받으면 상처만 남아요. 이젠 대부분 그런 저의 성향을 알고 옵니다. 그래서 돈 되는 일을 못 해요(웃음). 대안학교 사람이 만드는 공동체 마을이나 공동묘지 설계 일을 맡아서 했지요. 보람 있는 일입니다."
...
-땅은 귀찮은 것이니 죄다 평지로 만들어 위계와 구획이 정확한 도시를 만들자는 도시계획은 그 발상지였던 서양에서조차 폐기된 지 오래라고 하셨어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어딘가요? 마라케시? 산토리니?
"제겐 여전히 서울입니다."
-서울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요?
"북악산에 올라가서 남쪽을 보세요.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없어요. 산들의 산세가 도시 안에 있고 그 사이로 한강이 흘러요. 건축이 아무리 개판이라도 도시 지형의 풍광에 묻혀 버리죠. 천만 인구의 메타 도시 중 가장 아름다워요. 파리, 런던, 비엔나는 오히려 하이퀄리티가 지루해질 때가 있어요. 서울은 천방지축이에요. 지고의 선과 지고의 악이 공존하고 여전히 꿈틀댑니다."
...
-지금 집값은 선생에게 어떤 상념을 불러일으키나요?
"집값은 자기 존재값이죠. 하이데거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거주함으로써 존재한다고. 집을 사고파는 것은 자기 존재를 사고파는 거예요. 다만 값이 비싸다고 내 존재값이 올라가진 않아요. 터무니없이 비싼 집은 버블이고, 내 존재도 버블이 되는 겁니다."
-실례지만 선생은 어디 사십니까?
"지금 이 건축사무소 건물의 옥탑방에 삽니다. 이곳에서 4대가 같이 삽니다. 어머니, 저희 부부, 아들과 딸, 손자, 손녀 대가족입니다. 조금 좁지만 부대끼며 사는 게 가족이지요(웃음)."
승효상은 어린 시절을 부산의 피난민촌에서 보냈다. 여덟 가구가 마당을 두고 모여 살던 삶의 풍경은 그에게 ‘즐거운 불편'의 기억으로 남았다. 가난한 자의 미학이 아닌 가난할 줄 아는 자의 미학이란 우리 삶에 어떤 무늬를 남길 것인가. 모든 건물은 언젠가는 허물어지니 거기엔 어떤 진실도 없다고 했다. 결국 같이 어울려 살았다는 기억만이 진실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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