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라일락과 아버지(2018년 4월 5일)

divicom 2018. 4. 5. 07:22

아버지,

아버지 좋아하시던 라일락이 피었습니다.

쌀알보다 작은 꽃송이에서 연보랏빛 향기가 한움큼씩 쏟아집니다.

아버지 방 창문 아래 흐드러졌던 철쭉에도 손톱만한 봉오리들이 맺혔습니다.


아버진 가을에 떠나가셨지만

슬픔은 봄부터 시작되었지요.

아버지 창 아래 활짝 핀 철쭉을 보면서

'내년엔 철쭉만 피고 아버지는 창문 안에 계시지 않겠구나' 눈물을 흘렸습니다.

현관에서 눈물을 닦고 웃는 얼굴로 들어가면

아버지는 늘 "바쁠 텐데 뭐하러 또 왔어?" 웃으며 맞아 주셨지요.


미세먼지도 황사도 없던 어제는 꼭 아버지 떠나시던 날처럼 맑았습니다.

모처럼 어머니가 저희집에 오셨습니다.

라일락과 군자란과 제라늄... 꽃과 나무를 둘러보시곤

"꽃과 나무가 있으니 사람 사는 집 같구나"하며 웃으셨습니다.


어머니를 바래다 드리는 길,

아버지와 함께했던 마지막 산책길의 벤치를 보았습니다.

맞은편 편의점에서 사다드린 브라보콘을 그 벤치에 앉아 맛있게 드셨지요. 

다시 한 번 아버지와 그 벤치에 앉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돌아오는 일요일은 아버지의 생신.

어머니의 마음은 벌써 아버지의 유택에 가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위로해 주십시오.

육십여 년 동행을 잃은 어머니를 안아 

슬픔과 절망이 지금 세상을 적시는 비처럼 녹아내리게 하소서. 


아버지,

당신은 이미 다른 세계에 가 계시지만

저희는 아직 아버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다시 뵈올 때까지 그곳에서 평안하셔요.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