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스마트폰이 하는 일(2017년 9월 22일)

divicom 2017. 9. 22. 07:46

사람을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 사용자가 많은 세상에서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하나의 정의가 될 수 있겠지요. 바로 그 정의에 해당하는 제가 보기에 사용자들의 스마트폰 의존도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들이 그 기기와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길지는 그들만이 알 것입니다. 


스스로 판단이 가능한 어른들이 스마트폰에 탐닉하는 건 그렇다쳐도 아직 판단 능력이 없는 아이들, 특히 유아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보면 아찔합니다. 스마트폰에 맛 들인 아이는 어떤 장난감이나 놀이도 즐길 수 없게 된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우리 주변엔 아기에게 스마트폰을 들려 주고 친구와 노닥이는 엄마들이 갈수록 늘어갑니다. 

마침 김수종 선배께서 이와 관련된 글을 쓰셨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www.freecolumn.co.kr

‘토이저러스’몰락과  스마트폰

2017.09.21

'토이저러스'(Toys"R"Us)가 망하기 일보직전이라고 합니다. 
토이저러스는 종업원 6만2,000명, 작년 매출액 115억 달러(약 13조 원), 37개국에 1,500개의 매장을 거느린 세계 최대 장난감 소매체인점입니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한 망할 일이 없을 것 같던 거대 기업이 비틀거리는 것을 보니 이 세상에 지속가능한 것은 없나 봅니다.

내가 ‘토이저러스’ 장난감 체인점을 구경한 것은 1980년엔가 미국 뉴욕 교외였던 것 같습니다. 그 넓은 매장이 온통 장난감이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혼미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의 슈퍼마켓만 보고도 놀란 가슴이 미도파나 신세계 백화점만큼 큰 매장에 장난감이 가득한 것을 보고 또 한 차례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 여러 개의 판매점이 있지만 1984년 이후에야 토이저러스는 해외 판매점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찰스 라저스란 청년이 1948년 워싱턴 D.C.에서 자전거 수리공인 아버지의 가게에 어린이 가구점을 차렸습니다. 마침 베비붐으로 어린이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라저스는 인형과 다른 장난감을 팔았습니다. 장난감 장사가 잘 되자 그는 판매 점포를 늘리고 회사 이름을 Toy(장난감)와 자신의 성 Lazarus를 합성해 ‘Toys“Я”Us’라고 지었습니다. 로마자 R을 거꾸로 세운 파격적인 로고 ‘Toys“Я”Us’는 매장이 생기는 지역마다 어린이들의 혼을 빼앗았던 브랜드입니다. 


토이저러스가 망해 가는 이유는 아이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장난감 판매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요인이 장난감 판매 환경을 바꿔 놓고 있다고 합니다. 첫째 아마존 같은 온라인 상거래 업체가 발전하면서 토이저러스는 고객을 뺏겼습니다. 둘째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스마트폰의 발전입니다. 

미국 언론이 분석하는 것을 보면 스마트폰이 변화의 동인(動因), 즉 게임 체인저(Game-changer)인 게 분명해 보입니다. 처음에 인터넷과 전화기를 결합한 모바일 통신수단으로 어른들이 아마존 온라인을 통해 장난감을 구입하고 어린이들도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면서 집에 앉아서 장난감을 구경하고 고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까지는 직접 매장을 찾아 장난감을 구입하느냐 온라인에서 구입하느냐의 차이였지 장난감의 매력 자체가 떨어졌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변화는 아이들이 직접 손에 들면서 스마트폰은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장난감이 되었다는 겁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면 ‘유튜브’와 다양한 게임 등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컨텐츠를 언제 어디서든 보고 즐길 수 있습니다. 어른들에겐 교육적으로 자녀들이 스마트폰의 부작용에 물드는 게 걱정이지만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벽이 거의 허물어져 버린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를 보면, 리서치 회사가 미성년 자녀를 둔 부모 350명을 대상으로 자녀 놀이 수단으로 가장 많이 쓰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라는 답이 65%로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이미 전통적인 장난감은 스마트폰에 맛들인 어린이의 마음을 되찾아올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요즘 전철을 타면 승객은 전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스마트폰은 어린이의 장난감일 뿐 아니라 어른의 장난감, 나아가 노인들의 장난감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스마트폰은 어떻게 진화하며 세상을 바꿀지 모를 일입니다. 

며칠 전 신문기자 출신 여남은 명이 점심을 같이했습니다. 환갑을 지난 나이에서부터 80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의 몸이 불편하다는 소식에서 시작해서 건강 문제가 화제가 되더니 어쩌다 귀농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인공지능 얘기로 확대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이 급속히 발전하니 시골에 땅을 구해 서울의 집 거실에 앉아 밭도 갈고 씨도 뿌리고 비료와 농약도 친 후 가을에 추수를 해서 서울 집으로 운반하면 된다는 백일몽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시골로 가는 것은 일하러 가는 게 아니고 머리도 식힐 겸 작황을 구경하러 가는데, 운전하기엔 나이가 먹게 되니 자율주행차를 타고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농담을 담고 한마디씩 하면서 손에 든 스마트폰을 가리켰습니다. 이런 대화를 듣고 있노라니 은퇴자들이 하나의 대단한 공상과학소설(S.F.)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엮어가는 그 공상 소설 속의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움직이는 리모트 콘트롤은 무언중에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얼마나 많은 회사를 더 망하게 하고 새로운 기업을 만들지 모릅니다. 얼마나 인간의 생활을 바꾸고 웃고 울게 할지 모릅니다. 스마트폰의 진화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