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여름, 구름, 헌책방(2017년 7월 30일)

divicom 2017. 7. 30. 12:16

여름이 봄 끝자락 꽃바람을 타고 온다면 가을은 달구어진 지상을 내려다보며 유유히 흐르는 구름을 타고 옵니다. 

요즘 구름이 참 아름답습니다. 오늘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tbs FM 95.1 MHz)'의 첫 노래를 조용필 씨의

'내 이름은 구름이여'로 정한 이유입니다. 


기상청이 지난 100년 동안 한반도의 기후가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했더니 여름은 길어지고 겨울은 짧아졌다고 합니다. 기상청이 말하는 '여름'의 기준은 하루 평균 기온이 섭씨 20도 이상 지속되는 날인데, 작년 서울에서는 142일이 여름 기온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여름이 거의 다섯 달에 육박하는 것이지요.


여름이 길어지면 폭염, 폭우, 열대야, 집중호우 등이 잦아집니다. 기온이 섭씨 1, 2도 높아지면 생물종의 30퍼센트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도 지금 구름과 지상 사이를 합창으로 채우고 있는 매미들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즐거운 산책...'에서는 여름과 헌책방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폭염과 폭우로 인해 오이와 수박을 비롯한 

채소 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그러나 채소와 과일이 아무리 비싸도 사치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늘 농부들에게 감사하면서 쌀 때는 넉넉히 먹고 비쌀 때는 조금 먹으면 어떨까 합니다.


내일 모레면 8월이고 8월 첫 월요일인 7일은 입추입니다. 더위를 피해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지만 가을 냄새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지난 일곱 달 동안 무엇을 했는가 반추해보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겁니다. 그 시간을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냈다면 남은 다섯 달은 마음이 원하는 대로 보내야겠지요. 그런 면에서 지금이야말로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 같은 책을 들춰볼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 책이 비싸면 헌책방에 가도 좋겠지요. 


박혜은 맥스무비 편집장과 함께 하는 '영화 읽기'에서는 '슈퍼배드 3' '헛소동' '포크레인' '군함도'를 소개했습니다. 그 중에서 지금은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고 있지만 1980년엔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이었던 한 남자를 중심으로

5.18민주화운동을 돌아보는 영화 '포크레인'과,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됐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군함도

(하시마 섬)'가 보고 싶습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한국에서 개봉할 때도 그런 적이 많았지만, '군함도'가 이 나라 전체 스크린 2752 개 중 

2168개에서 상영 중이라니, 이 파시스트적 행태는 언제나 끝이 날까요? 이런 상황이 '포크레인' 같은 영화의 상영에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 ...


권태현 출판평론가와 함께 하는 '책방 산책'에서는 휴가 중에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두 권을 소개했습니다. 

영국인 수의사 제임스 헤리엇의 <이 세상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들>과, 이정록 시인의 시에 일러스트레이터 

주리 씨의 그림을 곁들인 <달팽이 학교>입니다. 이 두 권의 책은 전혀 다른 소재와 다른 방식으로 쓰였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너무 급하게 살지 말고 천천히 자연스럽게 살라는 것이지요.  


'문화가 산책' 에서 소개한 행사 중에 한국영상자료원이 홍콩특별행정구 설립 20주년을 기념해 벌이는 

홍콩 걸작 영화 무료 상영회가 있었습니다. 상암동 시네마테크에서 8월 8일까지 열리는데, '심플라이프'

'메이드 인 홍콩' '중경삼림' '화양연화' 등 총 17편이 상영된다고 합니다.


'즐거운 산책...' 말미에는 '오이하다'라는 단어를 소개해드렸습니다. 먹는 오이의 '오'는 짧게 발음하지만 

'오이하다'의 '오'는 길게 발음합니다. '오이하다'는 '충고하는 말이 귀에 거슬리다'를 뜻합니다. '거스를 오(忤)'와 

'귀 이(耳)'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충고에 발끈하지 말고 충고에서 더 나은 길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래에 '들여다보기'에서 읽어드린 제 글 '헌책방'을 옮겨둡니다. 연세대 앞에 있다가 몇 해 전 연희동으로 이사온 

정은서점에 갔다가 느낀 점을 적었습니다. 


헌책방

 

헌책방의 수많은 책들 사이를 걷다 보면

이 별에 살다가 떠나간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톨스토이, 보부아르, 윤동주, 전혜린...

한때 지구의 주민이었던 그들은 지금

어느 별의 주민이 되어 있을까요?

 

책은 꼭 사람 같아서 얼굴도 속내도 각양각색입니다.

그러니 책을 많이 읽고도 자기와 다른생각이나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책을 잘못 읽은 것이겠지요.

 

기업이 운영하는 중고서점은 냉방도 잘 되고 깔끔하지만

그런 곳을 진짜 헌책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헌책방에선 무엇보다 헌책의 냄새,

즉 사람의 냄새가 나야 하니까요.

 

외롭고 힘든 날엔 헌책방에 가보세요.

손때 묻은 책에서 풍기는 사람의 냄새를 맡으며

이 별을 다녀간 사람들과 다녀갈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