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기 전 새벽은 퍽 더웠습니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세상의 소리는 귀 밝은 사람의 잠을 방해하기엔 충분했습니다. 잔잔한 소음들 사이로 두 남자의 목소리가 불거졌습니다. 무슨 일이기에 새벽 다섯 시에 싸우는 걸까요? 붉게 도드라진 핏대가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베란다에 나가서 두 남자에게 긴 호스로 물세례를 줄까 생각하다가 '물이 아깝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무엇이나 소리를 내지만 인간처럼 다양한 소리를 내는 존재도 드물 겁니다. 인격에 따라 소리의 질과 크기도 달라질 테니 한 사람의 됨됨이는 그 사람이 내는 소리로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소음제조기 두 남자가 떠난 후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떨군 욕설도 다 씻겨 사라졌겠지요. 낮은 지대엔
재앙인 큰비가 저희 동네에선 아직 고맙지만 매미와 무궁화들이 걱정입니다.
오늘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FM95.1MHz)'에서는 매미와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침수로 고생하고
있는 충청도에 또 큰비가 오는 거나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70년대 말 저희 집도 침수를 겪었습니다. 침수는 하루
이틀에 그쳐도 집과 생활의 복구는 아주 오래 걸렸습니다. 게다가 자꾸 비가 내리면 복구활동이 지연되니 참 괴로웠습니다. 자비로운 비님, 충청도 침수지역엔 내리지 마소서.
어제는 중복, 오늘은 대서, 앞으로 보름이면 가을의 도착을 알리는 입추... 날씨가 절기를 지켜주면 좋겠습니다.
맥스무비 박혜은 편집장과 함께 하는 '영화 읽기'에서 소개한 영화 중엔 라몬 아로요라는 실존 인물을 그린 영화
'100미터', 영상미가 뛰어나다는 '프란츠', 전쟁을 '관람'하게 하지 않고 '체험'하게 한다는 '덩케르크'가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극장에는 갈 수 없으니 집에서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겠지요. 빗소리에 잠 못 드는 제 귀는 우리나라 극장의 큰 볼륨을 견디지 못하니까요.
권태현 출판평론가와 함께 하는 '책방 산책'에서는 성석제 씨의 소설집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과,
인지심리학자 스콧 배리 카우프만과 허핑턴포스트 선임기자 캐롤린 그레고어가 함께 쓴 <창의성을 타고나다>를
읽었습니다. 창의성은 타고나는 것인데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 창의적이 되려면 타고난 사람들을 흉내 낼 수밖에 없습니다.
<창의성을 타고나다>는 고도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마음의 작동원리 10가지'를 알려주는데, 그건 상상놀이, 열정, 공상, 고독, 직관, 겸험에 대한 개방성, 마음챙김, 민감성, 역경을 기회로 바꾸기, 다르게 생각하기라고 합니다. 이 열 가지 원리를 보면 21세기 한국 사람들이 창의적이지 못한 이유가 나옵니다. 상상, 공상,
고독, 직관을 거부하는 사회,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극도록 낮은 사회, 다르게 생각하면 이상하다고 하는 사회...
한국 사회는 그런 사회이니까요.
'문화가 산책'에서 소개한 행사 중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족보, 나의 뿌리를 찾아가다' 전시회에 가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 족보에 제 이름이 없는 것을 보고 속상해 할 때, 이젠 호적이 족보를 대신하며 호적엔 제 이름이 올라 있으니 속상해 하지 말라시던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즐거운 산책...' 말미에는 '포도하다'라는 말을 소개해드렸습니다. 과일 '포도'의 '포'는 짧게 발음하지만
'포도하다'의 포는 길게 발음하고, 뜻은 '죄를 짓고 달아나다'입니다. 요즘 포도, 복숭아, 아오리 사과 등 온갖 과일이 나오지만 남의 밭의 과일을 훔치면 안 됩니다.
남의 것 중에 훔쳐도 되는 건 마음뿐...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건 누군가가 내 마음을 훔쳐갔다는 뜻이겠지요.
오늘 첫 노래는 수해지역 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제목의 노래,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이었고, 마지막 노래는 여진 씨의 '그리움만 쌓이네'였습니다. 전곡 명단은 tbs홈페이지
(tbs.seoul.kr) '즐거운 산책' 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들여다보기'에서 읽어드린 제 글 '매미와 사람'을 옮겨둡니다.
매미와 사람
매미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매미는 농촌보다 도시에 더 많다고 하는데요,
빛, 온도, 습도 등의 조건이 매미가 살기에 적당할 뿐만 아니라
새와 말벌 같은 포식자가 적고, 플라타너스, 벚나무 등
매미가 좋아하는 나무가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매미 소리가 아무리 요란해도 카페나 지하철에서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비하면 음악 같은데, 왜 그럴까요?
매미 중에는 수컷만이 구애하기 위해서 우는데
큰소리로 울수록 암컷에게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매미와 달리 사랑을 위해서는 오히려 목소리를 낮추는데요,
떠드는 목소리가 듣기 싫은 건
그 속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카페와 지하철의 떠버리들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들도 속삭이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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