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카페와 말없음표(2017년 7월 9일)

divicom 2017. 7. 9. 11:58

더운 날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땀이 줄줄 흐릅니다. 예전엔 아무리 더운 여름 날에도 땀을 흘리지 않아 '인간답지 

않다'는 비난 아닌 비난까지 들었는데 어느 해 여름부터 온몸의 땀구멍이 모두 열린 것 같습니다. 마침내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되어 별로 불만은 없지만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집안 살림을 할 때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하고, 

집중해야 하는 일이나 창조적인 작업을 할 때는 카페에 가는 일이 잦습니다.


집에서 두어 블록 떨어진 곳에 있던 전통술집이 사라진 자리에 직접 구운 스콘과 커피를 파는 카페가 생겼습니다. 그 술집은 십여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사라지고 나니 한 번 가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한 자리에 있었으니 분명 그 집만의 색깔이 있었을 겁니다. 새로 생긴 카페는 커피값이 

싸고 냉방이 심하지 않은데다 하루 지난 스콘을 싸게 파니 저 같은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이라 몇 번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못 갈 것 같습니다. 카페 주인은 음악을 너무 크게 틀고, 카페 손님들은 

너무 큰 소리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tbs FM95.1MHz)'에서는 카페와 말없음표에 대해 생각해보고 다양한 노래들을 

들었습니다. 박혜은 맥스무비 편집장과 함께 하는 '영화 읽기'에서 소개한 영화 중엔 보고 싶은 작품이 여러 

편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홍상수 감독의 '그 후'는 칸 영화제에서 소개된 후 프랑스와 다른 유럽국가들에서 먼저 개봉할 만큼 관심을 끌었다고 하는데, 출판사 사장 봉완의 불륜을 소재로 관객에게 '사는 이유'를 묻는다고 하니 

궁금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봉완은 권해효 씨가 연기하는데 극 중 그의 아내는 실제 아내인 조윤희 씨라고 합니다. 


박석영 감독의 '꽃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재꽃'도 보고 싶습니다. 42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이었고 지난 6월에 열렸던 5회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대상인 뉴비전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박 편집장의 말 --우리가 꽃이라고 불러주지 않아서 잡초 취급받는 아이들, 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 꽃이다--라는 말이 반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영화 읽기' 끝에는 Elvis Presley의 'How's the World Treating You'를 들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마음이 아팠습니다.


권태현 출판평론가와 함께 하는 '책방 산책'에서는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과, 사회학자 최석호 교수의 <시간 편집자>를 읽었습니다. 박준 씨는 5년 전에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시집으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시인인데 오늘 소개한 산문집에도 매우 감각적인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권태현 평론가가 읽어준 구절이 이 책의 주제이겠지요.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시간편집자>에서 기억나는 내용은 미국에서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을 하게 된 건 1938년인데, 새벽 노동이 

없어져 여유가 생기자 노동자들이 집이 아닌 극장으로 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가 관련 통계도 

나왔는데, 하고 싶은 여가 활동 항목에서 TV를 보고 싶다고 한 사람은 15.8퍼센트뿐이었지만, '가장 많이 하는 여가 활동' 항목에서는 TV 보기가 69.9퍼센트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하고 싶은 여가 활동' 1위는 59.4퍼센트를 차지한 여행이라고 합니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제게는 조금 놀랍습니다.


'문화가 산책'에서 소개한 내용 중엔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있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세계가 취한 우리 문학' 특별전이 있었습니다. 42개 언어로 번역된 200여권의 한국 문학 도서가 전시 중인데, 그 중엔 21개 

언어로 번역된 고은 시인의 시집들도 있다고 합니다. '문화가 산책' 말미에는 고은 시인의 시에 조동진 씨가 곡을 

붙여 부른 '작은 배'를 들었습니다.


오늘 '즐거운 산책...'은 '가멸다'라는 말로 마쳤습니다. '가멸다'는 '가멸차다'와 마찬가지로 '재산이 많고, 살림이 

넉넉하다'를 뜻합니다. 지금 가멸한 살림이 아니더라도 절망하지 마시라고 진미령 씨의 '인생'을 마지막 곡으로 

들려드렸습니다. 아래에 '들여다보기'에서 읽어드린 제 글 '말없음표'를 옮겨둡니다.


말없음표

 

한밤중 빗소리에 잠을 설치고 나면

비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목마른 대지를 적시되 가끔은 말없음표처럼 침묵해달라고.

 

말없음표를 생각하면 박목월의 시 한 편이 떠오릅니다.

길처럼이라는 제목의 아홉 줄짜리 시이지만

여섯 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말없음표가 세 번이나 나옵니다.

 

머언 산 굽이굽이 돌아갔기로

산굽이마다 구비마다

절로 슬픔은 일어......

 

뵈일 듯 말듯한 산길

산울림 멀리 울려나가다

산울림 홀로 돌아나가다

......어쩐지 어쩐지 울음이 돌고

생각처럼 그리움처럼......

 

길은 실낱 같다

 

요즘은 날씨도 사람을 닮아간다지만

비는 사람 말고 시를 닮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