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정신을 잃은 사회에서 임신부들에게만 정신을 차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고 싶습니다. 요즘 임신부들 사이에서 수학태교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임신부가 수학을 공부하면 뱃속 아기가 태어난 후 수학을 잘하게 된다는 믿음이 퍼지는 것이지요. 믿음은 믿는 사람의 의지일 뿐 진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태교의 중요성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었지만, 그것은 인간 됨됨이의 문제이니 수학과 영어 공부 능력과는 무관합니다. 임신 전에 예비 엄마가 수학 공부를 해서 논리적 사고를 개선한 후에 임신을 하면 아이에게 그런 점이 유전될지 모르지만 임신 상태에서 하기 싫은 수학을 하다 보면 임신부가 스트레스를 받고 태아도 엄마의 스트레스를 나눠 갖게 되니 좋을 수가 없겠지요.
수학을 못하고 포기하는 학생을 '수포자'라고 부릅니다. '수포자'였던 저는 처음에 치렀던 대학입시에서 수학 '0'점을 맞고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낙방과 그로 인해 경험했던 일년 동안의 재수생활은 제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었던 시간이 됐습니다. 못하는 게 있는 사람이라야 잘하는 것도 있습니다. 모든 과목을 잘하는 사람 중에 천재는 없습니다.
사회는 미쳐 돌아가고 있지만 임신부들이나 어린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은 제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그나마 미래가 좀 나아질 텐데, 예비 엄마들과 젊은 엄마들이 광기의 첨단을 걷고 있으니 나라의 앞날이 어찌 될지 참 한심합니다. 아래는 '수학태교가 오히려 독이 된다'는 내용의 한국일보 허경주 기자 기사입니다. 기사 앞부분을 조금 줄여 옮겨둡니다. 기사 원문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http://hankookilbo.com/v/65b854e0a7d34f7b94e0a53e9d026d81
블록 쌓고 19단 외우고... 수학태교 되레 毒
예비 엄마들 사이에 수학태교가 다시 번지고 있다. ‘임신부가 수학을 가까이 하면 아이 두뇌발달에 효과적이고 논리적이 된다’는 그럴싸한 믿음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선배 엄마들의 조언처럼 등장하면서 열공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 이른바 수포자가 점차 늘고 있다는 언론 보도로 민감해진 엄마들의 불안심리를 이용한 상술도 더했다.
실제 23일 본보가 확인한 결과 임신부들이 즐겨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수학태교를 부추기는 글들이 다양하게 올라와 있다. ‘옆집 아이가 명문대 공대에 입학했는데 알고 보니 수학태교를 했다’ ‘(수학태교 덕에) 다섯 살짜리도 구구단을 척척 외운다’는 식이다. ‘방법을 알려달라’ ‘임신 6개월인데 너무 늦은 건 아니냐’는 상담 요구 글도 줄을 잇는다. 학창시절 수학을 못했던 예비 엄마들은 “내 아이만큼은”, 귀가 얇아진 임신부들은 “내 아이도” 수학을 잘하길 바란다.
수학태교는 유행까지 타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수학의 정석’ 등 고교 문제나 19×19단 외우기가 주를 이뤘다. 임신부들끼리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학습지를 풀기도 했다. 반면 최근에는 ‘초등학교 1, 2학년 수학교과가 더 어려워진다’ ‘요즘 초등 수학은 연산이 아니라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 나오면서 사고력과 언어능력을 요하는 스토리텔링식 문제지나 관련 교구가 각광을 받고 있다.
수학태교가 진행되는 수업이나 문화센터 강좌는 대기를 해야 들어갈 정도다. 임신 5개월의 임모(33)씨는 얼마 전 한 태교수업에 참여한 뒤 칠교퍼즐(일곱 개 조각으로 도형을 만드는 놀이), 펜토미노(같은 크기의 정사각형 5개를 붙여 만든 12개 조각으로 도형을 만드는 놀이)세트를 구매했다. 강사가 “교구를 이용하면 아이의 수학적 사고력과 공간지각력을 키울 수 있다”고 추천했기 때문. 임신 8개월의 황모(30)씨도 4개월 전부터 소마큐브(정육면체 3, 4개를 붙여 만든 7개 조각으로 입체도형을 만드는 놀이)와 스토리텔링이 접목된 수학문제집 풀이를 병행하고 있다. 황씨는 “초등학생 조카의 수학 문제를 보고 우리 때와 달라 당황했다”며 “단순 문제 풀이보다 도형 놀이나 생각하는 수학으로 창의력을 키우는 게 요즘 아이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학태교 바람은 부모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한 것일 뿐 실제 아이의 수학능력이 높아진다는 근거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물론 도형 만들기 과정에서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는 것은 엄마와 태아에게 긍정적이지만 그것이 창의력이나 논리적 사고와 직결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수학태교는 성취지향적 사회 분위기와 부모들의 불안이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라며 “2~3세 때 시키는 수학 교육도 큰 의미가 없는데 태아 때 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김영주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임신부가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수학태교를 할 경우 자궁수축이 발생해 오히려 태아의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며 “음악이든 산책이든 엄마가 편한 상태에서 즐길 수 있는 태교가 가장 좋은 태교”라고 조언했다.
'동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세기의 부음(2016년 10월 11일) (0) | 2016.10.11 |
---|---|
누가 백남기를 죽였나(2016년 9월 28일) (0) | 2016.09.28 |
딴지일보 김어준의 '뉴스공장' (0) | 2016.09.21 |
종교인의 성범죄(2016년 9월 19일) (0) | 2016.09.19 |
KTX사망사고(2016년 9월 14일) (0) | 2016.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