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블로그에 아무 것도 쓰지 않았습니다. 먼 곳의 친구처럼 가끔 찾아오는 고열과 씨름하며 꿈 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메르스'로 인해 더 시끄러워진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세상에는 오직
입만이 있는 것 같아 입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을 때 움직이지 않고도 갈 수 있는 곳, 책 속의 세상입니다. 소리 없이 위안을 주는 친구,
그러니 책이 고마운 것이지요. 눈과 손이 함께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에서 멈춥니다. 148쪽에 실린 시
'미개인'이 따뜻한 손처럼 지친 마음과 몸을 감싸줍니다.
시의 말미에 '라스무센 편, <에스키모의 시들>'이라 쓰인 것을 보니, 북극에 사는 이누잇 족이 가장 존경한다는
그린란드의 탐험가 크누트 라스무센이 이누잇 족이 쓴 시를 모아 편집해 출간했나 봅니다. '에스키모'는 보통
극지에 사는 이누잇 족과 유피크 족을 아울러 부르는 말입니다.
라스무센은 덴마크인 아버지와 이누잇 족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으며, 20세기 초 덴마크의 자치령 그린란드 섬에
가서 에스키모를 연구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미개인'을 읽으며 우리는 누구인가, '미개인'인가 '문명인'인가,
우리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생각해 보시지요.
미개인
나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집으로 돌아오라, 집으로 돌아오라.
내 영혼은 멀리 남쪽을 향해 떠났다네.
남쪽으로, 우리들의 남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집으로 돌아오라, 집으로 돌아오라.
나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집으로 돌아오라, 집으로 돌아오라.
내 영혼은 멀리 동쪽을 향해 떠났다네.
동쪽으로, 우리들의 동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집으로 돌아오라, 집으로 돌아오라.
나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집으로 돌아오라, 집으로 돌아오라.
내 영혼은 멀리 북쪽을 향해 떠났다네.
북쪽으로, 우리들의 북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집으로 돌아오라, 집으로 돌아오라.
나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집으로 돌아오라, 집으로 돌아오라.
내 영혼은 멀리 서쪽을 향해 떠났다네.
서쪽으로, 우리들의 서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집으로 돌아오라, 집으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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