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알랭 드 보통과 조선 백자(2015년 6월 27일)

divicom 2015. 6. 27. 10:14

세월이 수상할 때 반응하는 것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세상이 시끄러워지면 흙으로 스미는 물처럼 

침묵 속으로 스며들고 싶습니다. 책을 읽거나 그림을 보는 것이지요. 


요즘은 자는 방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글씨 '隱居復何求 無言道 心長'에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눈이 갑니다.

이 글은 '은거부하구 무언도심장'이라고 읽는데 '숨어 사는데 또 무엇을 구하겠는가, 말 없는 가운데 도 닦는 

마음만 자라나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럴 때 보면 좋은 예술작품 중에 도자기가 있습니다. 백자나 청자와 한참 대면하고 있으면 그의 침묵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게 되니까요.


이성낙 선생님을 만나뵌 적은 없지만 시절의 '도전'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저와 비슷하신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래 글은 지난 16일에 자유칼럼에서 보내준 것입니다. 



www.freecolumn.co.kr

달항아리에 ‘메르스 난국’을 담아

2015.06.16


근래 우리 사회는 중동호흡기증후군, 곧 메르스(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문제로 요동치고 있습니다.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드는데 필자까지 ‘가담’할 시점이 아니라는 생각이 앞서지만 이 질병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낮은 수준에 ‘국민적 자괴감’에 빠진 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우리 ‘백자 달항아리 이야기’로 위로의 글을 드리려 합니다. 

올해 초 특별한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저명한 작가로 우리에게 친숙한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1969~)과 철학자 존 암스트롱(John Armstrong, 1966~)이 함께 쓴 《Art as therapy(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 (Phaidon, 2014/ 문학동네, 2014)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손에 넣자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소설가와 에세이 작가로 저명한 알랭 드 보통이 미술 관련 책을 펴냈다는 사실 하나로도 궁금증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저자가 주로 미술사적으로 유명한 고전(古典)과 몇몇 현대 미술 작품을 소개하며 사회심리학적 측면에서 접근한 논거가 아주 독특했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소개한 도판 중에 흥미롭게도 우리에게 친숙한 예술 작품이 ‘불쑥’ 눈에 띄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백자 달항아리’였습니다(자료 사진). 반갑고 놀랍기도 해서 혹시나 하고 책에 실린 도판 전체를 훑어봤습니다. 책에는 총 141개의 도판이 실렸는데, 그중 조선 시대의 달항아리를 동양 문화권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소개한 것입니다. 일본 사진작가 스기모토 히로시(杉本博司, Sugimoto Hiroshi, 1948~)의 작품과 함께 말입니다. 저자가 그 많은 중국 명작들을 제쳐 놓고 왜 우리 달항아리에 관심을 가졌을까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선 달항아리에 대한 저자의 논거가 더욱 놀라웠습니다.
“한국의 백자 달항아리가 있다. 이 항아리는 쓸모 있는 도구였다는 점 외에도 겸손과 미덕에 최상의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항아리는 표면에 작은 흠들을 남겨둔 채로 불완전한 유약을 머금어 변형된 색을 가득 품고, 이상적인 타원형에서 벗어난 윤곽을 지님으로써 겸손의 미덕을 강조한다. 가마 속으로 뜻하지 않게 불순물이 들어가 표면 전체에 얼룩이 무작위로 퍼졌다. 이 항아리가 겸손한 이유는 그런 것들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여서이다. (중략) 항아리는 궁색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존재에 만족할 뿐이다. (중략) 이런 항아리를 보는 경험은 용기는 물론이고 강렬한 감동을 줄 수 있다. (중략) 겸손함은 항아리 속에 담겨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중략) 예술은 이미 충분하다고 섣불리 추정해서는 안 되는 균형과 선함을 시의적절하게 본능적으로 깨닫게 해줌으로써 우리의 시간을, 삶을 구원한다.” 

알랭 드 보통은 조선시대 도자기를 겸손의 미덕에 최상의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문화예술에 대한 흠모의 격 높은 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랑스러워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우리 미술 애호가들도 이미 오래전부터 조선 백자 달항아리에 대해 알랭 드 보통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백자 달항아리를 사랑하고 흠모하는 분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중에서 미술가로서는 김환기(金煥基, 1913~1974) 선생, 학자로는 최순우(崔淳雨, 1916~1984) 선생을 대표적인 분으로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김환기 선생은 도자기를 소재로 그 누구보다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달항아리라는 호칭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최순우 선생은 백자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찬미했습니다.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중략)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 간다.” 한편 고고학자인 김원룡(金元龍, 1922~1993) 박사는 달항아리에 대해 다음과 같은 뛰어난 시(1964년)를 남겼습니다.

백자대호(白磁大壺) 
조선 백자의 미(美)는/ 이론(理論)을 초월한 백의(白衣)의 미(美)/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껴서 모르면/ 아예 말을 마시오/ 원(圓)은 둥굴지 않고/ 면(面)은 고르지 않으나/ 물레를 돌리다 보니/ 그리 되었고/ 바닥이 좀 뒤퉁거리나/ 뭘 좀 괴어 놓으면 넘어지지 않을 게 아니오

조선 백자에는 허식(虛飾)이 없고/ 산수와 같은 자연이 있기에/ 보고 있으면 백운(白雲)이 날고/ 듣고 있으면 종달새 우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는/ 백의(白衣)의 민(民)의 생활에서/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고금미유(古今未有)의 한국의 미(美)/ 여기에 무엇 새삼스러이/ 이론을 캐고/ 美를 따지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는/ 느끼지 않는다면/ 아예 말을 맙시다

그렇습니다. 조선 백자는 이론을 초월한 우리민족이 지닌 문화의 눈높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필자는 김원룡 박사의 시정(詩情)에 담긴 무아지경의 아름다움이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겸손의 미덕과 맥을 같이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달항아리라는 도자기 조형물을 창조해낸 17~18세기 조선 시대 도공들의 예술적 눈높이에 가없는 찬사를 보내는 한편, 그 달항아리에 스며 있는 무아지경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아니한 당시 소비자이던 우리 선조들의 높은 예혼(藝魂)에 크나큰 긍지를 느낍니다. 문화는 소비자가 만든다는 말이 있듯 그들이 있었기에 달항아리 같은 예술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메르스’로 인해 여러 가지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이 같은 혼란이 부끄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우리 문화를 되돌아보면 긍정의 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드러난 문제를 달항아리에 차분히 담아 우리 문화의 본질인 조용하고 욕심 없는 대안을 찾아 치유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