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한국 외교와 남북관계(2015년 5월 13일)

divicom 2015. 5. 13. 08:25

어제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서 보내준 '현안진단'에는 동북아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우리 외교에 대한 우려와, 지금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처방이 실려 있습니다. 한마디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다시 동북아 외교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역 외교와 글로벌 외교의 중심에 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북 통일이고 통일을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대화의 단절이 가장 해롭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좀 더 너른 시각으로 남북문제에 임하기를 바라며, 아래에 '현안진단'을 옮겨둡니다. 



고래를 길들이는 새우’가 되기 위해서

대(對)주변국 외교와 대북정책의 함수관계

  지난 4월말 일주일 간격으로 개최된 중일정상회담과 미일정상회담 이후, 동북아에서 우리 외교의 고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외교부를 향해 무능과 전략부재를 성토하는 분위기는 여야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외교는 ‘고래를 길들이는 새우’이며 ‘미중 양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것은 축복’이라며 당당했던 외교부 장관도 우리 외교가 처한 어려운 환경을 실토하며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관계에서 주변 ‘고래’ 사이에서 외교로 국익을 도모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벅찬 과제이기는 하지만 등이 터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름의 입지를 강화해 나갈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냉전 시기에는 공산권과 대치하는 서방진영의 첨병 역할을 통해 주변국에 대해 효율적인 외교 레버리지를 행사했지만, 탈냉전 이래 우리는 이러한 집단방위(collective defence) 성격의 카드를 잃어버렸다. 대신에 우리는 남북관계 변화를 통해 동북아 정세를 선도하고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 즉 새로운 북한카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사실 우리의 지정학적 여건에 비추어 주변 강대국 외교에 있어서 북한카드 만한 것이 없었다. 안보에서는 미국과 힘을 합해야 하고, 경제면에서는 대중관계가 더욱 중요해지는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한, 우리가 가진 안보자산이나 경제자산만으로는 주변 ‘고래’들에 대해 외교 레버리지로 활용하기에 한계가 분명하다. 

  역사적으로도 남북관계는 국제질서 재편기의 불투명한 상황에서 위기 극복의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기여했다. 1970년대 공산화 도미노 현상과 닉슨독트린에 의해 조성된 힘든 상황에서 ‘7.4 남북공동성명’이 나왔고, 90년대 탈냉전의 대전환기 전후에 ‘기본합의서’와 ‘6.15 선언’이 있었다. 이들은 중요한 모멘텀을 발판으로 해서 남북관계를 안정적이고 평화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당시 주변강대국 외교에서 우리 입장을 강화하는데도 매우 유용하였다.
 
  우리 외교가 지금처럼 힘겨운 상황에 처해진 것은 최근 수년간 남북관계가 단절되고 외교 레버리지로서 북한카드를 상실한 것과 관련이 있다. 특히 동북아 질서 재편기에 우리의 외교 자산이나 레버리지가 한 가지라도 아쉬운 상황에서 북한카드를 잃어버린 것은 매우 아픈 일이다.


북한카드의 회복을 위한 틈새를 놓치지 말자

  최근 동북아 새 질서 형성을 주도하기 위한 주변국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분단 상황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한반도의 대립과 불안정에 편승하여 상대방을 겨냥한 재군비 경쟁 등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남북한은 제각기 다른 의미의 불안감에서, 이 상황에 맞서거나 그 속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승산이 없거나 위험이 너무 커 보인다.  북한이라는 새우는 군사력(핵과 미사일)으로 고래들과 맞서 보려고 하지만, 힘으로 고래를 이길 수 있는 새우는 없다. 남한이라는 새우는 미중 사이에 줄타기를 하면서 실리를 얻으려 하나 언제나 아슬아슬 하기만 하다. 한쪽의 ‘러브콜’에 응하는 것은 항시 다른 쪽의 ‘배신감’을 감수하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 모두에게 유용한 카드는 아직 서로 썩 내키지는 않더라도 상호관계를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다. 역사적 경험이 말해주듯이 남북관계 발전의 모멘텀이 마련된다면, 현재의 외교적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동북아 질서 형성에 남북이 주요 인자가 됨으로써 각자의 외교적 입지를 국제적으로 확보하는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다행히 최근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는 틈이 보인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 틈새를 파고들어 남북관계 개선과 외교 입지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우선 한미의 대북 대화자세 변화가 시사되고 있다. 5월초 우리 6자회담 수석대표는 북한과 탐색적 대화에 별도 조건이 없다고 말해 보다 적극적 입장을 보였다. 미국과 조율을 거친 발언일 것이며, ‘탐색적’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북한이 선(先)조치를 해야 한다는 기존요구에서 한 발짝 물러나 유연한 길을 열었다. 이제 북한이 보다 진전된 태도로 6자회담과 남북대화를 검토해야 할 차례다.

  둘째는 남북관계에 호재가 될 수 있는 몇몇 행사가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달에는 이희호 여사 방북이, 6월에는 ‘6.15 남북공동행사’가 추진된다. 또한 7월 광주 유니버시아드에 북한이 참가한다. 최근 우리 사회 여론이 무거운 만큼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이들 계기를 잘 활용해 남북관계의 흐름을 바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여사 방북이나 ‘6.15 공동행사’ 협의과정이 현재 북한에 억류중인 우리 국민의 석방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되어준다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국민여론이나 우방국 입장을 우호적으로 돌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5~7월의 행사가 ‘그들만의’ 잔치로 진행되지 않기를 바란다. 현재 우리 외교의 위상과 과제, 그리고 남북관계의 의미를 고려할 수 있고 북한과 소통의 토대가 갖추어진 분들이 함께 참여하여 우리 정부와 긴밀히 협조하면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남북관계, 돌발 악재의 관리에 신중을 기하면서 적극적 자세로 풀어라

  남북관계에 악재가 될 수 있는 사안은 더 많다. 우선 북한의 대남도발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난 8일 북한은 청와대 앞 통지문을 통해 그들이 주장하는 서해 분계선을 넘는 남측 군함에 조준타격을 하겠다면서 ‘용기가 있으면 도전해 보라’며 만용을 부렸다. 또 잠수함발사 미사일(SLBM) 기술을 과시하면서 유엔 제재라는 국제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허세를 보였다.

  둘째는 북한 인권과 관련하여, 우리 국회에서는 북한인권법안을 법안토의 10년 만에 제정할 가능성이 커졌고, 6월에는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서울에 설치될 예정이다. 또 수시로 대북전단 살포의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한편 현재 북한이 우리 국민을 억류하고 있는 사실이나 개성공단 임금관련 분쟁 등도 남북관계의 악재로 작용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악재들도 우리가 신중하게 관리하면 호재로 바꿀 수 있다. 우리 국민의 북한 억류는 분명한 악재이지만 정부의 다각적인 노력으로 석방이 이루어지면 호재가 되는 것처럼, 대처하기에 따라서는 현재 남북관계 상황에서 악재라고 생각되는 것들 대부분이 호재의 가능성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휴전선 부근에서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법적 규제근거가 없다고 애로를 표명했던 만큼, 국회 북한인권법안 토의에서 특정지역에서의  대북전단 규제의 합리적 기준에 대한 논의가 병행된다면, 입법 과정에 남은 난제를 돌파할 수 있으며, 남북관계 돌발 악재에 대한 정부 대응력을 높이고 해당지역 주민의 위험이나 민원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과 관련하여서는 철저하게 응징해야 하겠지만, 그들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도록 감정적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남북관계의 악재를 신중히 관리 통제하면서, 5~7월 행사를 통해 분위기를 끌어낸다면, 개성공단 노동규정 문제라든가 금강산 관광재개와 5.24 조치 문제 등 해묵은 과제와 함께, DMZ 평화공원 조성 등 정부가 애써 준비한 새로운 과제들도 논의하는 남북대화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8월의 광복절과 9월의 중국에서의 전승기념일 행사, 오바마 대통령 방한 등 굵직한 계기에 남북관계의 새 국면을 조성하고, 광복 70주년을 맞은 금년을 통일 민족사에 의미 있는 해로 기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고래를 길들이는 새우가 북한 하나 다루지 못할 까닭이 없다. 새우는 북한카드를 통해 고래들을 움직인다. 주변강대국들의 러브콜은 이렇게 우리 스스로가 자존의 심지와 지혜로운 전략을 구비하는데서 이루어지고 진정한 축복이 될 수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