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초상화를 통해 본 한국인과 일본인(2015년 5월 6일)

divicom 2015. 5. 6. 15:53

오늘 자유칼럼에서 아주 재미 있는 글을 보았습니다.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이 한국인과 일본인의 초상화를 통해 두 민족의 차이를 다룬 글입니다. 


피부과학 전문가이며 의학자인 이성낙 총장님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조선 초상화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반면, 일본의 초상화는 '보이는 것을 못 본 척'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두 나라 문화와 두 나라 국민에 대해 쓴 글은 여럿 보았지만 초상화를 분석하여 국민성의 다름을 유추해낸 글을 처음 보았기에 여기 옮겨둡니다.

이성낙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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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로 본 아베 일본 총리의 ‘역사 민낯’

2015.05.06


근래 과거사에 대한 아베 일본 총리의 ‘막무가내’식 행보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는 생각에 “어쩌면 그렇게도 정직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을 방문하는 여행객은 대체로 일본 사람 개개인은 친절할 뿐만 아니라 정직하다는 인상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더욱이 잘 이해되지 않고 혼란스러운 것은 개개인이 아닌 일본 사회가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해 아주 철저하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일본 사람 개개인은 정직할지 몰라도 일본 사회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일본 사람이 우리와 다른 ‘올바름의 잣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일 양국의 초상화에 나타난 차이처럼 말입니다. 

필자가 조선 시대 초상화를 분석 연구한 결과, 우리 초상화에서는 다양한 피부 병변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분석 자료 518점 중 73점(14.09%)의 초상화만이 아무런 피부 증상 없는, 즉 깨끗한 얼굴 피부를 보였을 뿐입니다. 요컨대 우리 초상화 중 약 85%가 각종 ‘비정상적인 것’을 숨김없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시(斜視), 실명(失明) 외에도 노인성 병변(病變)인 ‘검버섯’ 같은 흔한 피부 병변은 물론 결코 ‘아름답지 않은’ 천연두반흔(天然痘瘢痕, 마마 자국)과 함께 피사인(被寫人)이 만성간경화증(慢性肝硬化症)을 앓다가 사망했음을 임상적으로 추정할 수 있을 만큼 초상화의 얼굴을 짙은 흑갈색으로 묘사한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즉 조선 초상화에서는 티끌만큼도 ‘흠’을 감추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는 세계 초상 미술사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초상화 문화는 일본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초상화는 우리의 것과 달라도 이상하리만큼 너무 다릅니다. 일본 초상화에서는 어떤 피부 병변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高僧의 초상화 예외). 이는 일본 초상화 속의 얼굴이 예외 없이 하얗게 분장(粉牆)을 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 사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의 초상화(도쿄 고다이지 소장)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의 초상화(교토 대학교 박물관 소장)를 들 수 있는데, 둘 모두 안면을 백색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두 피사인의 사인(死因)을 추적해보면 만성간경화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 초상화처럼 얼굴을 황달(黃疸)이나 흑달(黑疸)을 직감할 수 있는 흑갈색으로 묘사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리 초상화와 달리 일본 초상화에서는 ‘숨김의 의도’를 강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초상화를 비교하면, 조선 초상화는 화가가 피사인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근거 바탕(evidence based) 정신에 입각해 그렸고, 일본 초상화는 화가가 ‘있음에도 못 본 듯’ 피사인을 그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전통 화법(畵法)과 사뭇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註: 필자의 박사 학위 논문 <조선 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병변 연구> 중에서)

여기서 필자는 근래 우리 사회의 거침없는 ‘까발리기’ 정서와 조선 시대 화가의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초상화 기법을 조선의 선비 사회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주목하고자 합니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있는 것을 외면하고, 보이는 것을 못 본 척하는’ 정서가 강합니다. 오늘날 일본 사람들이 과거사를 직시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이런 오랜 미장(美裝) 의식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간접적으로 뒷받침하는 다른 예가 있습니다.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는 신간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 편)》에서 한일 간 역사 인식 차이를 드라마틱하게 요약했습니다. “일본인들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들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 문화를 무시한다.” 이를 필자 나름대로 재해석하면, 우리는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 근대사에서 열등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를 숨길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1000년도 전에 한반도에서 넘어온 도래인(渡來人)문화를 여전히 숨기고 싶어 합니다. 이를테면 일본의 역사 왜곡은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아베 일본 총리가 지닌 ‘역사관의 민낯’이 겹쳐지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일본 사람 개개인은 정직하다고 하겠지만 일본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선을 우리에게 돌려 개개인이 좀 더 정직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아울러 그나마 한국 사회는 ‘까발리기 정서’ 안에서 ‘숨김없는 정직함’을 추구하려는 긍정적 역동성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