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승훈과 송명근 (2010년 2월 25일)

divicom 2010. 2. 25. 20:41

어제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 미터에서 금에달을 딴 이승훈과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김연아 얘기가 오늘 신문을 채우고 있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세계 정상에 오를 때까지 두 사람이 빙판 위에서 보냈을 인고의 시간을 생각하니 대견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1면을 장식한 김연아는 언제나처럼 깜찍하고 요염한 모습으로 건강한 아름다움이 무언지를 보여줍니다.

 

아름다움은 덜할지 몰라도 이승훈의 사진이 더 큰 감동을 줍니다. 활짝 웃어 눈이 작아진 이승훈과  2위를 차지한 러시아의 이반 스코브레프와 3위인 네덜란드의 보프 더용이 함께 찍은 사진인데, 두 사람이 사이좋게 이승훈의 넓적다리를 하나씩 나눠 치켜들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진실로 이승훈이 세운 기록을 자랑스러워 하고 기뻐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막내동생의 성취를 기뻐하는 형들의 모습입니다. 김연아의 사진이 아름다움을 웅변한다면 이 두 남자의 모습은 멋진 남자, 훌륭한 인간의 모습이 어떤 건지 보여줍니다.

 

이승훈을 받치고 선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다 보니 문득 건국대 병원의 송명근 교수가 떠오릅니다. 심장 명의로 알려진 송교수는 요즘 다시 자신이 개발한 새로운 심장 수술법(카바:CARVAR:Comprehensive Aortic Root and Valve Repair: 종합적 대동맥근부 및 판막성형)으로 인해 마음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1992년 국내 최초로 심장이식수술과 인공심장이식수술에 성공한 송교수는 1997년에 CARVAR를 개발했고, 이 수술법으로 800여 명을 시술하여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나라 안팎에서 노벨의학상 수상이 점쳐지고 있지만 국내의 관련 학회와 동료 의사들로부터는 끝없이 의혹과 시험을 받아왔습니다.

 

최근엔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한국보건의료연구원(보건연)이 CARVAR의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 시술을 잠정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복지부에 내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보건연은 송 교수가 건국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에서 시술한 환자 127명 가운데 26명이 부작용을 겪고 5명이 사망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합니다.
송 교수는 "보건연의 분석대로 127건 가운데 5명이 사망했다 하더라도 사망률은 4%로, 기존 판막치환술의 사망률 4~6.7%에 못 미친다”며 “근부 질환만 놓고 본 사망률 3.6%는 국제적으로도 최고 성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CARVAR를 둘러싼 논란은 2008년 11월 일부 흉부외과 의사들이 CARVAR의 안전성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지난달에는 송교수가 재직하는 건대병원의 의사 2명이 유럽흉부외과학회지에 부작용에 관한 논문을 게재했다가 해임되기도 했습니다.

 

오늘자 헤럴드경제엔 이 모든 논란은 “신기술 개발자가 초창기에 겪는 시련”이라고 하는 송교수의 말이 실려 있습니다. 송교수의 지지자들은 CARVAR의 유럽지역 사용승인 심사를 앞두고 있는 지금 국내에서 논란이 일어 심사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합니다. CARVAR는 2009년 5월에 우리나라 건강보험에서 시술은 할 수 있으나 건강보험 적용은 되지 않는 비급여 시술로 등재되었으며, 그때로부터 3년이 지난 후, 즉 2011년 6월 이후 급여, 비급여, 임의비급여(수술비를 받지 않고 하는 시술) 중 하나로 결정된다고 합니다.


 
저는 CARVAR 논란에 개입된 사람을 아무도 모르지만 몇년 째 계속되는 논란을 보며 의아함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송교수가 그렇게 많은 시술을 했는데 문제가 있다면 왜 환자나 환자 가족이 조용히 있는 건지, 왜 외국 의학계에선 아무 말이 없는데 송교수의 동료들이라 할 수 있는 국내 학회, 의사들, 보건연 등이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인지, 무엇보다 송교수가 개발한 수술법의 문제점을 파헤치는데 쓰는 시간과 노력으로 CARVAR를 능가하는  수술법을 개발할 수는 없는 것인지.

 

창의성은 다행히도 제로섬 게임의 대상이 아닙니다. 어떤 이가 좋은 수술법을 개발했다고 해서 다른 이는 좋은 수술법을 개발할 수 없는 게 아닐 겁니다. 아무리 뛰어난 거짓말쟁이도 오래, 많은 사람들을 속일 수는 없다고 합니다. 송교수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이제 그만 거짓말 탐지를 중단하고 자신들의 머리와 능력을 더 나은 수술법 개발에 써주기를 고대합니다. 멋진 웃음으로 이승훈의 성취를 축하하는 두 스케이터들처럼 송교수의 성취를 함께 기뻐하고, 그를 넘어설 노력을 해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