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조경철 박사의 별세 (2010년 3월 7일)

divicom 2010. 3. 7. 10:06

어제 아침 우리나라의 대표적 천문학자인 조경철 박사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망인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분 덕에 우리나라 국민이 이만큼이라도 별과 우주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마도 그런 점 때문에 조 박사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하기로 했겠지요.

 

평안북도 선천이 고향인 조 박사는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월남하여 서울의 연희대학(현재의 연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공부한 후 미국으로 갔습니다. 테네시주 투스큘럼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원에서 정치학 공부를 할 때, 은사이며 국립관상대 (현재의 기상청) 대장이었던 이원철 박사의 편지를 받고 전공을 천문학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 박사가 1926년 이학박사 학위를 땄던 미시간대 대학원에 입학, 천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땄는데, 조 박사의 1959년 석사 논문 (The New Light Elements of Five Eclipsing Variables)은 그해 미국천문학회지에 실려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후 미국에서 해군 천문대 천체물리 연구원과 항공우주국(NASA) 최고연구원, 호와드대 교수, 지오노틱스사 우주과학부장 등으로 활약한 후 1968년 귀국, 경희대와 연세대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고, 과학기술정보센터 사무총장, 한국천문학회장, 한국산업정보기술연구소장 등도 역임했습니다. 조 박사가 ‘아폴로 박사’라는 애칭을 얻은 건 1969년이라고 합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장면을 주한미군방송으로 보며 해설하다 흥분하여 의자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그런 별명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 에피소드가 말해주듯 조 박사는 소탈하고 재미있는 과학자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국제천문연맹(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의 소행성 목록엔 조 박사의 이름을 딴 행성 ‘Choukyongchol’이 올라 있습니다. 1991년 일본의 와타나베라는 사람이 자신이 발견한 소행성 4976번에 조 박사의 영문 이름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조 박사는 1992년에 한국우주환경과학연구소를 설립하여 소장으로 일하면서 최근에는 강원도 화천군 광덕산에 ‘조경철 천문과학관’ 건립을 추진해왔습니다. <전파천문학>, <현대물리학>, <Life and Physical Universe> 등 170여 권의 대학생 및 청소년을 위한 과학도서와 60여 편의 논문을 남겼습니다.

 

작년 8월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30m급의 로켓 나로호(KSLV1ㆍKorean Space Launching Vehicle1)의 완성을 축하하며 서울경제신문에 기고한 글을 보면 그가 여든의 나이에도 여전히 뛰는 가슴을 가진 과학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당당한 우리의 우주로켓을 보라. 1단 로켓의 길이 25.8m, 2단 로켓의 길이 7.7m인 도합 33.5m의 위용은 정말로 우리나라의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총 중량140톤, 추력(推力)170톤의 거구가 오는 2009년 8월19일에 나로우주센터에서 불을 뿜으며 하늘을 날 것이다. 우리는 이 순간 온 국민 손을 모아 뜨거운 성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오늘은 광복절이어서 더더욱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다. 바로 이 날이 대한민국도 세계의 우주 개발을 선도하는 10대국의 대열에 당당하게 우뚝 서는 영광스러운 날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주는 우리에게는 그저 바라만 보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도 우리의 힘으로 우주로 간단 말이다.“

 

대중과 소통하는 과학자로 평생 사랑받던 조 박사가 정치적 비난의 대상이 된 건 작년 6월에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때문입니다. 그 글에서 조 박사는 언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과열 추모’한다며 이렇게 썼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가족들이 저지른 불미스러운 사건에 그도 연루되어 그 고민을 이기지 못해 죽음으로 청산하려 했던 사실은 덮어두고, 방송은 노 전 대통령의 과거 행적과 군중의 추모행렬만을 미화 보도하는 데 사상 최대의 물량 공세를 쏟아 부었다. 일촉즉발인 북한의 도발행위에 대한 보도가 뒷전으로 밀릴 정도였다. 매스컴이 국가의 위기와 개인 사건의 비중을 이렇게 취급해서야 되겠는가.

 

이런 와중에 연세대 김동길 교수와 박두식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던진 용기 있는 발언에 나는 깊은 경의를 표한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과감하게 대변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과학도라서…’라며 입을 다물고 있었던 나약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게 여겨졌다. 매스컴의 반성을 촉구하며 우리 모두가 이 나라의 경제회복과 북한의 동향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

 

인터넷엔 ‘별 박사’의 부음을 슬퍼하는 기사와 함께 그를 비난하는 글들이 보입니다. 바로 그 기고문 때문입니다. 가끔 정당의 러브콜을 받는다는 소문이 있긴 했어도 평생 과학자로 살아오신 분이 왜 여든이나 되어 그런 글을 썼는지 이해할 수 없는 만큼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조 박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온 몸으로 증언한 교사이며 반면교사였는지 모릅니다. 별이 된 ‘별 박사,’ 조경철 박사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