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의 두 위원장 사태를 보면 한심합니다. 2008년 12월 5일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공금 관리 부실 등의 이유로 해임되었던 김정헌 위원장은 최근 법원으로부터 '해임처분 집행 정지'결정을 받아 문예위에 출근하고 있습니다. 문화관광부가 김 위원장을 해임하면서 밝힌 공식적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고, 대개는 지난 정권에 의해 임명되었던 사람을 밀어내려는 유인촌 장관의 인사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작년 2월에 취임한 오광수 위원장도 출근합니다. 오씨는 문예위 본관에 있는 위원장실로, 김씨는 본관옆 아르코 미술관 3층에 별도로 마련된 집무실로 출근한다고 합니다. 직원들은 김 위원장의 업무 보고 요구엔 응하지 않고 오 위원장의 업무 지시에만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김 위원장은 직원들의 거부가 계속될 경우 오 위원장의 업무 중단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예위 홈페이지에 보면 이 위원회는 2001년부터 준비를 시작해 2005년 9월 "훌륭한 예술이 우리 모두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으로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모든 이가 창조의 기쁨을 공유하고 가치 있는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되었습니다. 초대 위원장은 문학평론가인 김병익 씨였고, 김정헌 씨가 2대, 오광수 씨가 3대 위원장입니다.
언론이 '한 지붕 두 위원장' 사태라고 부르는 문예위 내부의 갈등을 보다 보면 문예위의 목표가 얼마나 헛된 단어들의 나열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천박한 정치가 개입한다 해도 "모든 이가 창조의 기쁨을 공유하고 가치 있는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기관이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모양으로 전락할 수 있느냐는 거지요. 화가로, 미술평론가로 평생을 살아온 두 사람이 왜 편협한 정권의 노리개가 되어 언론에 회자되느냐는 겁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오광수 현 위원장에게 있습니다. 전 위원장의 해임이 부당한 것으로 판결이 났으니 복직된 위원장이 임기를 채울 수 있게 물러나주면 됩니다. 정부에서 물러나지 말란다고 물러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못 들은 척 버티라는 정부의 말을 무시하고 그만두면 다시는 위원장 직에 오르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평생 평론가로 쌓아놓은 명성이 있는데 그깟 위원장 감투가 대수입니까? 1938년생이시라니 우리 나이로 73세, 여덟 살이나 아래인 김 위원장과 다투어 열세 살이나 어린 유 장관 입에서 "재미 있다"는 말이 나오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참, 이상한 나라, 이상한 정부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창조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이 중심을 잡고, 국민이 정치너머 "가치 있는 삶"을 기억하고 그것을 위해 진력하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문화와 예술까지 우습게 만드는 정치 행위가 어서 끝나길,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길 바랍니다. 참, 두 위원장이 출근하면 두 위원장 다 급료를 받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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