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사다 마오 양에게 (2010년 3월 1일)

divicom 2010. 3. 2. 07:5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끝난 지 사흘이 되었습니다. 은메달을 따고도 눈물을 철철 흘리던 아사다양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했지만 김연아 선수를 이길 수 없었다는 솔직한 말이 여러 사람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지금쯤은 눈물의 흔적을 지운 채 마음을 다잡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벌써 얼음판에 올라 비장의 신무기라는 쿼드러플 (네 바퀴 회전)을 연습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보통 사람을 능가하는 재능과 조건과 의지를 타고 났으나, 아주 뛰어난 사람에는 미치지 못하는 사람, 그 사람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뿐입니다.

 아사다양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김연아 선수는 한국인이 아닙니다. 귀화를 해서 외국인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녀가 세운 기록이 피겨역사상 최초의 기록이며 그녀가 감동시킨 게 전 세계인이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만 기쁨을 주고 한국인만의 응원을 받는 한국 선수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사다양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사다양도 그렇게 되기를, 일본의 선수, 일본의 딸을 벗어나  세계 피겨인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 나아가서는 세계인 모두의 사랑과 응원을 받는 선수가 되기를 바랄 겁니다.  기록의 세계는 예술의 세계와 같아, 선수의 목표는 상대적인 것이 아닌 절대적인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에서 세운 기록에 안주하지 않고 더 좋은 기록을 위해 매진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자극을 주는 뛰어난 동료가 있다는 건 축복이지 불운은 아닙니다. 얼핏 자신이 따야 할 금메달이 다른 사람  것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 선수가 밉겠지만, 그 선수 덕에 자신의 기록이 향상되는 걸 생각하면 그 동료야말로 자신을 진화시키는 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사다양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김 선수를 폄하하거나 김 선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사다양을 깎아내리는 것은 기록의 본질을 모르는 소치입니다. 이번 밴쿠버 경기에선 김 선수가 워낙 뛰어난 기량으로 금메달을 수상하여 그런지 김 선수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아사다양을 김 선수의 라이벌로 보지않고 동정하는 편인데, 아사다양을 응원하는 일본인들 중엔 인터넷을 통해 김 선수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이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점을 생각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나 그런 처사는 오히려 끝없이 자신을 진화시켜온 아사다양에게 누가 되는 일입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너무 '일본적'인 나라였습니다. 한 나라가 고유한 문화적 특징을 갖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사고방식이 너무 그 나라적이라는 건 시야가 좁거나 배타적이라는 뜻입니다. 주변국과 평화로운 공존을 꾀하는 대신 자기 민족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여 호전적이 되기도 합니다. 고대로부터 한반도의 국가들에게서 문화를 배워온 일본이 16세기 말에 조선을 침략하고 20세기 초 또 다시 조선을 식민지배한 것은 일본이 그런 나라 중 하나임을 보여줍니다. 

 

좁은 시각은 개인을 왜소하게 만들고 국가를 존경받지 못하게 합니다. 일본이 20세기 초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여러나라 국민들을 상대로 저지른 잘못을 아직까지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일본이 아직 그때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오늘은 한국의 삼일절입니다. 1919년 3월 1일 한국의 백성들이 일본의 식민지배에 맞서 봉기했던 일을 기념하여 국기를 게양하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던 선열들을 상기하는 날입니다. 그날의 봉기 이후 백년이 되어가는데도 일본은 여전히 반성할 줄 모르는, '진화하지 않는' 나라이니 불행한 일입니다.

 

지난 여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세계의 진보적 인사들의 박수를 받으며 정권을 잡을 때, 일본이 마침내 달라지려나 보다 기대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부가 최근 사립학교 재학생에게 취학지원금을 주기 위한 법안을 제출하며 조선학교를 지원대상에거 제외하려 하는 걸 보니 하토야마 총리마저 일본식 좁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한겨레신문의 김효순 대기자가 오늘 자 칼럼에 쓴 것처럼, 조선학교는 1940년대 일본의 조선인들이 자녀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기 위해 세워 지금껏 유지해왔습니다. 지금 전세계는 다문화사회를 지향하며 다인종간의 '우애'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판국에 '우애'를 기치로 정권을 잡은 하토야마 총리가 이렇게 편협한 사고를 보인다는 게 참 씁쓸합니다. 어쩌면 1947년에 태어난 하토야마 총리가 부모세대의 구시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사다양과 김연아 선수는 모두 1990년생입니다. 20세기가 끝나갈 때 태어난 것이지요. '인간은 부모보다 세대의 영향을 받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사다양이 부디 편협한 어른들의 사고방식을 전수받지 말고, 멀리 넓게 보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김 선수를 이겨야 할 상대로 보지 말고 자신을 진화시켜주는 요소로 보고 감사하길 바랍니다. 일본 언론은 아사다양이 20일 앞으로 다가온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쿼드러플 점프에 도전할 거라고 합니다.  쿼드러플 점프든 뭐든 아사다양이 원하는 건 꼭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그 성공이 일본인 아사다의 성공이 아닌 세계인 아사다의 성공이 되어 세상 사람 모두에게 기쁨을 주고, 일본이 구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 좀 더 큰 나라가 되는데 기여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