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스텔라'를 본 한국인 관객이 1,000만명이나 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는데 급급하여 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않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왜 그렇게 많이 볼 걸까요? 과학과 우주에 관심이 많아서일까요, 아니면 이 영화를 보아야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마침 제가 존경하는 김수종 선배가 자유칼럼에 이 영화 얘기를 쓰셨기에 옮겨둡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며 자신을 비춰보기 바랍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이 영화에도 적용될 테니까요.
| | | | | 인터스텔라와 시간의 단상(斷想) | 2015.0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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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는다는 생각보다는 한 해가 눈 깜짝할 사이에 가버렸다는 생각이 더 큽니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지인들의 죽음이 엊그제 일 같은데 몇 년씩 흐른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많습니다. 하루가 여삼추로 길었던 20대의 시간과 3년이 하룻밤 같이 짧게 느껴지는 60대의 시간은 분명히 다른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것이 심리인지 과학인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한국인 1,000만 명이 구경했다는 영화 ‘인터스텔라’를 놓칠세라 보았습니다. 한국인 5명 중 1명이 구경했다니 대히트라 할 만합니다. 우주물리학자 킵 손이 제작 초기부터 깊숙이 관여해서 만들었다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 영화는 중력, 상대성. 양자역학, 블랙홀, 웜홀 등 물리학 이론과 현상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과학에 조예가 없는 사람에게 자막과 영어 대화 그리고 수시로 등장하는 과학 용어를 머릿속에서 동시에 꿰맞추며 이해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1,000만 명씩 구경해서 재미있게 보았다니 한국인은 과학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인 게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과거 스타워즈, 쥬라기 공원, 아바타가 대히트를 한 곳이 한국이니 말입니다. 과학 영화이기에 재미있는 것인지 기획이 흥미로운 것인지 모르지만 참 재미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킵 손의 친구이자 천재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지구가 온난화로 유황이 펄펄 끓는 행성으로 변할 것이므로 다른 위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농작물 병충해로 황폐화되는 지구를 대신하여 살아갈 새 별을 찾아 우주여행을 떠나는 나사로 프로젝트 설정은 호킹 박사의 예언을 연상시켰습니다.
이 영화를 보셨다면 어떤 대목이 흥미로웠던가요? 사람마다 다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우주여행에서 나이를 먹지 않고 돌아온 아버지 쿠퍼와 임종을 앞둔 80대의 딸 머프의 상봉 장면입니다. 중력이 강한 블랙홀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휩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거나 특이점에서는 시간이 멈추기도 합니다. 블랙홀을 여행을 하는 아버지는 몇 시간의 여행에 불과하지만 지구에 남은 10세의 딸 머프는 그 동안 성장하고 대학을 다니고 물리학자가 되어 70여 년을 산 것입니다. 30년 전 영화 ‘백투더퓨처’에서 광속보다 빠른 자동차를 타고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며 부모의 연애 모습을 구경하던 장면이 오버랩되어 영화를 더욱 인상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갑니다. 지구 중심에서 낮은 곳은 높은 곳보다 중력이 셉니다. 이론적으로는 서울에 사는 쪽이 대관령에 사는 쪽보다 장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측정만 가능할 뿐이지 그 차이는 몇 백분의 1초도 안 된다고 하는군요. 오래 살려고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 집을 지은들 소용없는 짓입니다.
결국 인간은 지구 중력의 영향 아래 꼭 같은 시간을 타고 가는 여행자들입니다. 시간의 빠르기란 다르지 않을 텐데 왜 나이가 들면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일까요. 왜 같은 나이인데도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즐기는 시간은 짧기만 할까요. 아인슈타인은 시간의 상대성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젊은 여자와 함께 앉아 있으면 1시간이 1분과 같이 느껴지고, 뜨거운 솥뚜껑 위에 앉아 있으면 1분이 1시간과 같이 느껴진다. 이것이 상대성이다.”
인간에게 시간이란 무엇일까요. 왜 시간의 흐름에서 세대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다우베 드라이스마의 시간에 대한 관찰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는 회상능력과 생체시계에 의해 청년기의 시간과 노년기의 시간의 빠르기가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기억 속에서 과거는 망원경을 보는 것 같아서 시간이 단축된 것처럼 느껴지고 시간을 나타내는 표지들이 20대의 것은 강렬하게 남아 있지만 나이가 들고 난 후의 것은 그 표지판이 희미해지면서 시간이 빨리 흐른 것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생체시계 가설은 더욱 실감납니다. 갖가지 실험을 통해 나이가 들수록 생체시계를 통제하는 호르몬 분비가 떨어지면서 시간 인식의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미국의 한 신경학자는 노인들에게 숫자를 세는 방식으로 3분의 시간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추정해보라는 실험을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3초밖에 오차가 나지 않는 반면, 노인들은 평균 40초나 더 경과했다고 합니다. 일에 몰두하게 하면서 똑같은 실험을 하자, 노인들은 거의 2분에 가까운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비로소 3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차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젊은이의 생체시계가 나이든 사람의 생체시계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을 증명해준 실험입니다.
다우베 드라이스마는 시간을 흐르는 강물에 비유합니다. "객관적인 시간, 즉 시계에 표시되는 시간은 계곡을 흐르는 강물처럼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젊은 사람은 강물보다 빠른 속도로 강둑을 달릴 수 있다. 중년에 이르면 속도가 조금 느려지기는 하지만, 아직 강물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면 강물의 속도보다 뒤처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강물은 한결같은 속도로 계속 흘러간다."
사람의 생체시계가 빠를수록 시간은 늦게 간다는 얘기입니다. 생체 시계는 호흡, 혈압, 맥박, 호르몬 분비, 세포분열, 수면, 신진대사, 체온이 망라된 생체의 리듬이자 박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과 의학이 초스피드로 발달하는 시대이니 인간은 노쇠한 생체시계까지 고쳐놓겠다고 도전할지 모릅니다. 이미 연구하는 곳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 생각하면 참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 머릿속에 꽉 박힌 공간개념으로서 지구란 게 빅뱅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 넓은 우주에서 보잘 것 없는 티끌에 불과하며, 당연히 여기는 나의 시간이라는 게 내가 숨을 거두는 순간 소멸해버리는 찰나라는 걸 생각하면, 시공간의 개념은 불가사의하기만 합니다.
인간은 먹는 나이를 어떻게 조절하며 살아야 할까요. 환갑을 전후한 사람들이 고민할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퇴직해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루는 길고 1년은 짧다고 합니다. 시간의 문제는 경제와 지위와 명예의 문제보다 더 본질적인 것 같습니다.
인터스텔라의 마지막 장면에서 임종을 앞둔 늙은 딸 머프가 젊은 아버지 쿠퍼에게 말합니다. “나는 죽음을 지켜줄 자녀들이 많으니 아빠는 여기 있지 말고 브랜드(우주여행을 같이 한 여자 동료)를 찾아 가세요.” 시간의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에게 많은 암시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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