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마왕 신해철, 인간 신해철(2014년 12월 26일)

divicom 2014. 12. 26. 10:50

고 신해철 씨가 남긴 글과 사진들이 지난 24일 책으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너무도 빨리 이곳을 떠나간 여행자... 그는 자신이 지상에서 보냈던 짧았던 시간을 음악은물론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두었습니다. 역시 그는 참으로 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증오하고 경멸하는 자들과 싸움을 계속'했던 신해철 씨, 그가 얼마나 고단했을지... 가슴이 아픕니다. 어쩌면 그의 글들은 그 힘든 싸움에서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벼렸던 무기였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유로든 그가 이 글들을 남겨 주어 감사합니다. 


아래에 신해철 씨의 유고집에 대한 한국일보 기사를 조금 줄여 옮겨둡니다. 기사 전문은  

http://www.hankookilbo.com/v/913c97b7e2a7413fb15a3dfd887b4be8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신해철 씨, 고맙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을 동정하소서.


 

마왕 신해철이 기록한 인간 신해철

 

고인 PC서 발견한 글 묶은 유고집

첫 경험음악종교사회문제에

독서광 어린 시절다한증 고민 등

소소한 개인사까지 고백

 

아아, 재즈 음반을 완성하고 죽고 싶다. 단 한번도 도전하지 않은 생경한 분야, 정말 음악이란 얼마나 설레고 즐거운 일인지……

 

죽음의 길목에서 신해철(1968~2014)을 돌려 세운 건 음악이었다.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에도 그랬다200610월 그가 차를 몰고 강북강변도로를 달리다 사고를 당했을 때였다.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직후 이런 말이 그에게 들렸다. “직진을 하면 넌 죽는다. 다른 사람들은 슬퍼할지 몰라도 너는 영원한 고독으로부터 해방되지. 그러나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면 넌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네가 증오하고 경멸하는 자들과 싸움을 계속하겠지. 그 선택은 항상 인간에게 있다.”신해철은 왼쪽으로 핸들을 잡아 돌렸고, 살았다. 그는 이 일을 두고 이렇게 썼다. “음악을 해서 살아남은 지도 모르겠다. 다만 팬들에게 말하고 싶다. 있을 때 잘 하라고. 나는 여러분의 곁에 영원히 있지 못할 것이기에.”

 

신해철은 어린 시절부터 종종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고 고백한다. 늘 죽음이 그의 정신 한 켠에 자리 잡아서일까, 죽음에 직면한 경험 때문일까. 고인은 30대에 이미 자신의 삶을 글로 정리해뒀다. 부인 윤원희씨가 고인의 사후 컴퓨터에서 발견한 ‘book’ 폴더에는 수십 개 파일의 글뭉치가 있었다.

 

고인의 글이 유고집 마왕 신해철’(문학동네)로 출간됐다. ‘그대에게로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그의 데뷔 날인 1224일에 맞춰서다.

 

글은 원고지로 따지면 약 2,000장 분량이었다. 프로필부터 어린 시절 이야기, 첫경험, 음악, 교육, 종교, 역사, 사회문제에 이르기까지. 이미 책 출간을 오래 전부터 염두에 둔 듯했다. 파일은 대부분 초고를 여러 번 퇴고한 듯한 수정본이었다. 고인은 파일에 일일이 이름도 붙여뒀다.


편집자 박영신씨는 연대기 순으로 정리만 했을 뿐 말하는 듯한 고인의 문장을 그대로 살려 실었다목차도 고인이 붙인 파일의 이름들이라고 설명했다. 고인은 자신의 사진도 따로 모으고 그에 맞는 설명까지 기록해뒀다. 박씨는 파일에 남은 수정 일자로 추측해보면 고인은 2006년 전후로 원고를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책에서 신해철은 방송이나 인터뷰로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자신을 털어놓는다. “막상 음악계에 나와보니 살벌한 전쟁터였다. 눈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굽실거리면서 비굴한 웃음을 짓거나 싸가지 없고 거만한 놈으로 찍히거나 둘 중 하나를 반드시 택해야만 하는 비정상적인 세계였다.”

 

그가 택한 건 후자였다. 팬들이 지켜보는데도 무대에 올라와 욕을 퍼붓는 엔지니어,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으면 소속사 동료가수들에게 보복하겠다는 피디, 야외 공연장에서 대기실조차 만들지 않아 가수들을 추위에 떨게 방치한 방송사와 싸웠다.

 

그러나 신해철은 나이가 열 살 이상 어린 멤버에게도 명령조의 말투를 사용하지 않으며 후배들에게 커피 심부름 따위를 시키지 않는 뮤지션이었다. 이와 달리 세상이 평가하는 자신을 두고 신해철은 사회라는 커다란 연극에서 내게 맡겨진 배역이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독재자 신해철의 캐릭터를 원한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이랄까.”


누구나 인정하는 달변가인 신해철은 독서광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초등학교 시절 책을 읽으면서 학교에 가다 재미있는 대목이 나오면 쓰레기통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한참을 읽었다. 도보로 10분 거리의 학교를 오가는 데 세시간이 걸렸다. 이미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안에 있는 책을 모조리 읽어 치워 백과사전까지 집어 들었다. 그런 독서편력으로 그가 추천하는 책 25권의 목록이 이번 유고집에 실려있다. 1번은 ‘모모’(미하엘 엔데)다.

염분으로 모든 악기를 망가뜨릴 정도로 심했던 다한증, 장기 병원치료를 받은 불면증, 양 팔의 상습적 탈골, 그럼에도 군에 입대했다가 얻은 양쪽 무릎 연골막 파열 등 소소한 것들도 책에서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