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우리들의 천국 (2009년 4월 1일)

divicom 2009. 10. 31. 11:16

형편이 좋지 않은 친구가 아프다기에 문병을 가니 2인실에 있습니다. 그새 생활이 좀 나아졌나 생각하는데 친구가 말합니다. “5인실에 있었는데 환자 중에 교회 다니는 사람이 있어서... 문병 온 사람들이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송 부르면서 나한테도 교회 다니세요, 예수님 영접하면 나아요, 자꾸 그러니 괴로워서...”

 

집에 가는 길에도 천국을 파는 사람이 여럿입니다. 오리고기 전문식당 앞에선 교회 선전 플래카드를 든 10여 명이 찬송을 부르고 있고, 길을 건너니 중년 여인이 아는 사람처럼 다가와 교회광고지를 끼운 휴대용 화장지를 건넵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 50미터쯤 가다가는 “불신지옥 예수천국”이라 쓰인 커다란 붉은 십자가를 둘러멘 남자를 만납니다. 어둡고 지친 얼굴, 갈비탕이나 한 그릇 먹이고 싶지만 오해를 사기 쉬우니 그냥 갑니다.

 

-천국 가는 길-

 

며칠 전 택시를 타고 새로 지은 교회 앞에 신호대기중일 때 운전기사가 말했습니다. “로또만 맞으면 교회를 지을 거예요.” 독실한 신자인가 생각했더니 다음 말이 엉뚱했습니다. “신학교 나와 취직 못한 목사, 전도사 많으니 두엇 불러다 미리 헌금 수입을 몇 대 몇으로 나눌 건가 정한 후에 간판을 다는 거예요. 수입이 아주 짭짤하대요. 교회나 절이나 종교기관은 세금을 안낸다면서요?”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천당 못 간다”고 가르치는 건 바로 이런 교회일지 모릅니다.

 

18세기 스웨덴의 천재 과학자이며 신학자인 스베덴보리는 56세 때 영계를 체험한 후 지옥과 천국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수많은 신학저서를 남겼습니다. 그는 죽음은 있으나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 죽은 후 천국으로 가는가, 지옥으로 가는가를 결정하는 건 종교도 지식도 재산도 아니며 지상에서 진실로 행한 이타적 사랑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침내 집입니다. 힘들 땐 텔레비전을 켜놓고 생각 없이 앉아있는 게 제일이지만, 화면 속엔 가문 밭에서 말라 죽어가는 배추들, 물을 맘껏 먹지 못한 가축들이 빈 수통을 핥는 모습이 처연합니다. 얼른 채널을 돌립니다. 폭풍우와 태풍을 견디려면 횡대보다 종대를 이루어 걸어야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살수차를 동원해서 물을 쏘아대고 그 물에 흠뻑 젖은 유명 개그맨들이 크게 웃습니다. 저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은 해남의 목마름을, 아니 세상의 목마름을 모르는 거겠지요. 경제위기가 뭐야 하는 부자들처럼 말입니다.

 

서울 큰 교회에 다니는 친구가 성경공부 모임에서 “경제 상황이 이러니 모두들 힘들잖아요?” 했더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을 짓더랍니다. 지난 주 발표된 고위공직자 재산과 국회의원들의 후원금 내역을 보면 쉬이 이해가 됩니다. 공직자 60퍼센트의 재산이 늘고 한나라당 의원들의 후원금은 92퍼센트나 늘었다고 하니까요.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은 4억4천390만 원이 늘어 356억 9천 여 만원이 되었답니다. 집 한 채만 빼고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하셨으니 대통령의 재산이 늘어난 건 좋은 일입니다.

 

-천국 만들기 캠페인-

 

지구촌의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는 시민단체 지구촌나눔운동이 발행하는 소식지 봄 호의 표지 글은 “물은 곧 빈곤이다”입니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은 수도꼭지만 틀면 물을 마실 수 있지만 나머지 3분의 2는 생존을 위협하는 갈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나라 교회들이 천국가기 캠페인 대신 물 아끼기 캠페인을 벌이면 어떨까요? 죽은 후에 천국 가라고 설득하는 대신 목마르고 굶주린 이웃의 입에 물과 음식을 넣어주며 살아서 천국을 만들자고 캠페인을 벌이는 건 어떨까요. 마침 오늘은 만우절, 누구나 바보가 되어 웃는 날입니다. 이 날을 기해 지금 나보다 힘겹게 사는 사람들에게 내세의 천국을 양보하는 바보가 되기로 결심하면 어떨까요? 그거야말로 이현주 목사가 얘기한 “예수, 그분을 다시 바라보자”가 아닐까요? 우리들의 천국을 지금 여기서 시작하는 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