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거짓말을 자꾸 하면 (2009년 2월 18일)

divicom 2009. 10. 31. 11:09

지난 달 문화체육관광부는 종교단체들이 내놓은 자료를 근거로 ‘2008종교현황’을 발표했습니다. 인구 4천 8백만 명인 우리나라에 8천 2백만 명이 넘는 신도가 있다니 종교단체들이 거짓말을 했나 봅니다. 과거 어느 정부보다 짙은 종교색으로 물의를 일으켜온 현 정부도 자꾸 거짓말을 하니 종교와 거짓말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거짓말은 얼굴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초콜릿투성이의 입으로 초콜릿을 먹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식의 노골적인 거짓말, 숨겨둔 애인을 만난 후 가게에 들렀다 온 남편이 아내에게 애인 얘기는 빼고 가게에 다녀온 얘기만 하듯 중요한 사실을 빠뜨려 상대의 오해를 유도하는 거짓말, 사실이 아닌 걸 믿도록 오도하는 거짓말, 말은 맞지만 진의를 숨기는 거짓말,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제외한 나머지를 과장하는 거짓말...

 

-정부의 거짓말-

 

청와대는 최근 경찰에 용산 철거민 참사를 잠재우기 위해 군포 연쇄 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고 지시했음을 인정했습니다. 처음엔 부인하다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 개인적 생각을 전한 거라고 말을 바꾸더니, 행정관이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보낸 이메일은 “비록 사신(私信)이지만” 청와대 근무자로서 부적절해 경고했다고 했습니다. 경제위기로 우울한 국민을 웃기려는 걸까요? 초콜릿 범벅인 입으로 초콜릿을 먹지 않았다고 우기는 것 같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키스디)이 지난달 내놓은 “방송규제완화의 경제적 효과 분석”을 언론관계법 개정의 당위성을 강조하는데 이용하며, 법이 통과되면 2조 9천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2만 천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달 초 연세대에서 열린 미디어공공성포럼 세미나에서 동의대 문종대 교수는 “2004년 이후 방송시장이 연평균 10퍼센트 성장했지만 고용인원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며 고용창출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한나라당 법안대로 규제를 완화하고 키스디의 계산 방식으로 고용증가 여부를 산출할 경우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방송 산업의 일자리가 12,693개 증가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3,021개 줄었고, 대기업이 지상파를 인수하면 이윤논리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문 교수의 설명입니다.

 

국토해양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당위성 홍보를 위해 만든 동영상에서 거짓말이 무더기로 발각되자 홈페이지를 통해 ‘해명’했습니다. “우리나라 하천환경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자연적인 습지가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강조할 목적으로 ‘자연습지 전무’라는 자막이 삽입됨. ‘전무하다’는 표현은 강조를 위하여 사용된 것으로 사실왜곡을 의도했던 것은 아님... 철새가 찾지 않는다는 표현은 하천환경이 점점 나빠지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자 한 것은 아님... 홍보동영상은 영산강과 낙동강의 수질이 나쁘다는 사실을 죽은 물고기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했음. 다만, 외국 사진이 사용된 것은 적절치 못했던 것으로 판단됨.”

 

-거짓말하면 다리가 짧아져-

 

반성 없는 ‘해명’을 보니 아직 드러나지 않은 심대한 거짓말이 얼마나 많을까 걱정이 됩니다.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포기한다며 25명 규모의 사업단을 해체하고 41명으로 구성된 ‘4대강 살리기’ 기획단을 출범시켰지만, 사업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19세기 이탈리아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에서 요정은 말합니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거나 다리가 짧아진다고.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여 코가 길어졌지만 긴 다리가 자랑인 요즘엔 다리가 짧아질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길지 않은 다리가 더 짧아지면 본인도 괴롭고 보는 이도 괴로우니, 제발 거짓말 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