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한겨레신문 '삶의 창'에 실린 제 칼럼입니다. 원자력발전으로 전력부유국이 되겠다는 건 무지가 키운 꿈이겠지요. 1970년대 후반 처음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던 시절엔 원자력이 얼마나 무서운 에너지인지, 원자력발전의 후유증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1986년 4월의 체르노빌 참사와 2011년 3월의 후쿠시마 사고를 겪고도 여전히 원자력발전으로 전력수요를 충당하겠다고 하는 건 참으로 무식하고 무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례가 없는 에너지 과소비 국가입니다. 당장 실천이 가능한 몇 가지 절약법으로 올 여름 전력부족은 물론 전반적 에너지 수요을 줄임으로써 원자력발전 의존도를 낮추면 얼마나 좋을까요?
냉장고 청소하기
오랜만에 냉장고를 청소합니다. 선반을 끄집어내어 닦고 깊이 들어앉은 반찬통을 꺼내 정리합니다. 모처럼 여유로워진 냉장고, 여름내 이 상태를 유지하면 조금이나마 전기를 절약할 수 있겠지요?
오월에 30도를 넘나들더니 유월의 시작과 함께 해수욕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덥고 길 올여름에 하필 전기 공급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서류를 위조해 불량부품을 사용한 원자력발전소들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가동을 중지했기 때문입니다.정부에서는 ‘원전 비리’를 ‘천인공노할 범죄’로 규정하고,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의 실내온도는 28도에 맞추고, 피크시간대 사용량도 지난해의 20% 이상 줄여야 하며, 계약전력이 100㎾ 이상인 건물들, 그러니까 4층 이상 건물 대부분은 한낮에도 실내 온도를 26도 이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언론에서는 연일 큰 소리로 전기 부족을 걱정하지만, 우리의 여름보다 더 덥고 더 긴 여름을 살아내고 우리의 밤보다 어두운 밤을 보내는 무수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전기를 아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여름철 전기 소모의 주범은 냉방입니다. 실내 냉방온도를 1도만 올려도 매년 2조원어치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하철과 버스의 냉방도 심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내가 너무 시원하면 바깥공기가 더 덥게 느껴지고, 그러면 실내 온도를 더 낮추게 되니까요. 마찬가지 이유로 승용차의 실내도 너무 시원하게 하지 않는 게 좋겠지요.가게나 찻집 등이 문 열어놓고 냉방하는 일은 결코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벌금 300만원 하는 식의 솜방망이 처벌 대신 한달 영업정지 하는 식으로 강경하게 조처해야 합니다. 문을 닫고 있으면 영업하지 않는 것으로 오인하는 손님이 많아 매출이 감소한다는 게 상인들의 주장이지만,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영업하면 그런 오해는 자연히 사라질 겁니다.가정에서는 가급적 에어컨을 켜지 말아야 합니다.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사느냐 하지만 이 세상엔 에어컨을 켜고 더위를 이기는 사람보다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근래 우리나라에선 한여름에 중풍과 구안와사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심한 냉방으로 실내외 온도차가 커지면서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던 혈관이 막힌다는 거지요.에어컨이 없는 가정이라면 저처럼 냉장고를 정리함으로써 전기를 아낄 수 있습니다. 냉장실은 60%만 채웠을 때 냉장 효과가 가장 좋으며, 냉장고 안의 음식이 10% 늘어날 때마다 전기 소비량은 3.6%씩 증가한다고 합니다.밤낮으로 번득이는 옥외 전광판을 끄고 상가의 불빛을 줄이는 것도 좋겠지요? 화려함의 대명사인 서울 강남 압구정이 요즘 ‘동양하루살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밝은 곳을 좋아하는 이 벌레가 밤마다 쇼윈도를 덮는 바람에 상점들이 일찍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한강의 수질이 나아져 일어나는 현상이라지만, 정말 그럴까요? 혹시 ‘낮은 밝고 밤은 어둡다’는 진리를 거부하는 현대적 삶에 가하는 자연의 일격이거나, ‘소비가 미덕’이라는 서구자본주의식 풍조에 ‘동양’의 자연이 보내는 경고가 아닐까요?한 가지의 부족이 여러 가지의 풍요를 가져오는 건 흔한 일입니다. 전광판과 네온사인을 끄면 밤이 어두워져 일찍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 늘고 그렇게 되면 저출산 문제가 조금이나마 해소될지 모릅니다. 밤이 어두우면 별 헤는 사람이 늘어나고, 별 헤기가 일상이 되면 멈췄던 원전을 재가동하거나 새 원전을 지을 필요도 없어질 겁니다.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그때쯤엔 새사람이 될지 모릅니다.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한겨레신문 칼럼(삶의 창)'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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