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칼럼(삶의 창)

5.18 광주 (2013년 5월 11일)

divicom 2013. 6. 8. 11:27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5.18민주화운동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 같습니다. 올해엔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 덕에 인구에 회자되다가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사건에 묻힌 듯합니다. 대의를 위해 흘린 피가 사소함에 탐닉하는 대중에 의해 잊혀지는 건 늘 있어온 일이지만, 적어도 나라를 생각하고 역사를 생각하고 옳은 삶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5.18은 결코 잊힐 수 없는 상처입니다. 아래는 오늘 한겨레 신문 '삶의 창'에 실린 제 칼럼입니다.



광주 생각


‘계절의 여왕’이 왔다고 빛 고운 옷을 입고 교외로 나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오월이 곧 무채색 슬픔의 계절인 곳도 있습니다. 광주(光州), 이름은 ‘빛고을’이지만 오월 광주엔 빛이 없습니다. 곳곳에 피어 있는 꽃들은 시인 김남주가 노래하던 ‘잠자는 피’입니다.


첫 미팅 파트너와 존경하는 선배 한 분이 광주 출신일 뿐 저와 광주는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오월이 오면 뭔가 무거운 것이 가슴을 누르는 것 같습니다. 33년 전 신문기자로 경험했던 ‘5·18민주화운동’ 때문이겠지요.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후 전두환 소장이 이끄는 신군부는 ‘12·12사태’로 불리는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이듬해 오월엔 날로 거세지는 민주화 요구를 계엄으로 눌렀습니다. 계엄하 서울시청에 있던 ‘언론검열단’에 인쇄 직전의 신문 대장을 들고 가 러닝셔츠 차림의 군인들에게 검열받던 일이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검열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에 빨간색 돼지꼬리를 달 때면 분노가 치밀었지만, 내색하면 다른 기사까지 다칠까 봐 꾹 참았습니다. 삭제된 기사의 자리를 미처 채우지 못해 빈칸이 있는 채로 신문이 인쇄되어 나온 일도 있었습니다.

1929년 일제 치하에서 ‘광주학생 항일운동’을 벌였던 광주가 신군부의 횡포를 보고만 있지 않은 건 당연합니다. 1980년 5월14일부터 대학가와 전남도청 일대에서 거리시위가 벌어졌고, 18일엔 계엄군이 대학생들을 구타·연행하면서 시민의 항거에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5월27일 계엄군이 총으로 ‘광주사태’를 진압할 때까지 그 도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아직도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참고: 5·18기념재단 www.518.org)

유엔 전문기구 유네스코는 5·18민주화운동이 우리나라와 아시아 다른 나라들의 민주화에 기여한 것을 기리기 위해 2011년 5월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에 등재했습니다. 1929년 11월3일 일제의 4대 명절 중 하나인 메이지세쓰(명치절)에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을 벌였던 광주, 그 광주가 반세기 만에 다시 피로 쓴 역사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인류의 성장통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나 칭송이 슬픔을 지우는 것은 아닙니다. 나라와 세계의 민주화는 중요하지만 그것을 위해 내 아버지, 내 동생, 내 친구가 피 흘리는 건 막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5·18민주화운동 33돌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광주는 다시 슬픔의 제상을 차리고 있습니다.

광주 밖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저 광주 시민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가신 이들을 추억하고 기릴 수 있게 돕는 것뿐입니다. 그들이 술을 따르고 싶어하면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면 노래를 부르는 것이지요. 공식적 추모의 자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싶어하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고 함께 목 놓아 부르면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석달이 되어 갑니다. 박 대통령과 전임자는 같은 당 출신이어도 다르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있습니다. 전임자는 취임 첫해를 빼곤 한번도 5·18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은 이 중요한 행사에 꼭 참석해주길 바랍니다. 민주화에 목숨을 바친 ‘임’들을 위한 행진곡을 선창하여 이 노래로 분열된 국민의 통합에 기여하고, 이 나라가 광주에 진 빚을 아주 조금이나마 덜어주길 바랍니다. ‘잠자는 피’가 다시 꽃으로 피고 광주가 제 이름 ‘빛고을’을 찾는 날, 그날을 향한 한걸음을 간곡히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