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칼럼(삶의 창)

세상에서 제일 나쁜 부모(2013년 8월 3일)

divicom 2013. 8. 3. 11:44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 '삶의 창'에 실린 제 칼럼입니다. 부모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부모가 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선 옛날 부모들이 보여주던 맹목적 사랑조차 찾기 힘듭니다. 날이 갈수록 나은 인간이 되겠다는 의지 없이 부모가 되면 안 됩니다. 현명한 사람이 좋은 부모가 되니까요. 



세상에서 제일 나쁜 부모  


동네 카페에서 삼십대 후반 남녀가 책을 봅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남자는 종이책을 읽고 찌푸린 여자는 전자책을 봅니다. 책 든 사람은 무조건 반가워 두 사람 옆에 자리를 잡습니다. 여자의 핸드폰이 울립니다. 여자가 일어나 나가더니 초등학교 일학년쯤 된 사내아이를 데리고 들어옵니다. 빼빼 마른 소년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두운 얼굴입니다.


아이가 앉으려는 순간 여자가 갑자기 아이를 욕하며 때리기 시작합니다. 어찌나 세게 때리는지 앙상한 등에 금이 갈 것 같습니다. 아이는 처음 당하는 일이 아닌 듯 울지도 않습니다. 구경꾼 같던 남자가 저를 흘깃거리더니 아이를 데리고 가 음료수를 사옵니다. 말없이 음료수를 마시는 아이를 향해 남자의 잔소리가 조곤조곤 이어집니다. “엄마가 지금 기분이 나쁘셔. 네가 버릇없이 구니까 화나신 거야, 알겠어?”
 

아이는 소리 없이 음료수만 마십니다. 가끔 제 쪽을 향하는 아이의 시선이 ‘엄마가 때리는 것, 아빠가 잔소리하는 것, 옳아서 참는 게 아니에요. 내가 셋 중에 가장 작고 약하니까 할 수 없이 참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며칠 전 식당에서 본 풍경이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상급생쯤 된 두 아이와 함께 온 부부, 남편은 킥킥대며 스마트폰 게임을 즐기고 아내는 성난 얼굴로 고기만 구웠습니다. 처음엔 “엄마!” “아빠!” 하던 아이들 눈에 실망이 번지더니 볼이 미어져라 고기만 먹었습니다. 아들이 쭈뼛쭈뼛 “엄마, 나… 사이다” 하자 딸도 얼른 “난… 콜라” 했습니다. 여자의 “시끄러!” 소리에 고개를 든 남자, 스마트폰에 박혀 있던 두 눈에서 독화살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어머니는 자신의 감정을 아이에게 전가하는 어머니입니다. 자기 기분이 좋을 때는 아이가 잘못해도 웃어주고, 자신이 화나면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어머니. 제일 나쁜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납게 만드는 아버지입니다. 돈 벌어다 주니 내 할 일은 다 했다고, 아이 키우고 집 건사하는 건 아내의 책임이라며 아내를 외롭고 화나게 하는 아버지, 그래서 사나워진 아내가 무섭다며 밖으로 도는 아버지.

예전엔 자녀를 위해 평생 뼈빠지게 일하고도 생색내는 부모가 적었는데 요즘엔 자식들 키우는 게 힘들다고,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엄살을 부리는 부모가 많습니다. 학원에 보내고 고기를 사주면 부모 아니냐고, 부모 노릇은 돈으로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법사가 되고 싶습니다. 투명인간이 되어 말로 매로 때려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낳아달라고 한 적 없는데 당신이 낳았잖아? 낳았으면 제대로 키워야 하잖아?’

아이를 때려 마음과 몸을 아프게 한 손, 밤새 욱신욱신 꼭 그만큼 아프게 하고 싶습니다.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아버지의 전화기를 빼앗아 높은 나뭇가지 끝에 매달고, 독화살 쏘던 눈을 퉁퉁 붓게 하고 싶습니다. 앞을 볼 수 없으면 정말 보아야 할 게 무엇인지 깨달을지도 모르니까요.

오늘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것을 보면 내일 그들의 관계가 어떨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린 자녀에게 손찌검과 폭언을 하는 부모는 자녀들이 성인이 된 뒤 그들로부터 비슷한 학대를 받을 겁니다. 아들딸과 대화하는 대신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부모는 훗날 다 자란 아이들에게서 자신들의 지금 모습을 보게 되겠지요. 그때 주름진 입으로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먹는데 꼭 스마트폰을 해야 해?’ 하고 불평하면, 지금의 자기들만큼 나이 든 아들딸이 반문할 겁니다. ‘왜 그래요? 두 분도 늘 그랬으면서?’

책 속에 길이 있다지만 부모가 되는 길은 책 아닌 눈 속에 있습니다. 지금 바로 아이들의 눈을 보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