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한겨레신문 '삶의 창'에 실린 제 칼럼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은 세계 15위 이내이지만 우리 국민은 별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불행은 어른들 자신의 책임이지만 어린이들의 불행은 그들이 초래한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은 불안과 욕심에 사로잡혀 어린이들에게 다른 아이와 같은 삶을 살라고 강요합니다. 타고난 재능은 학원을 전전하며 사라집니다. 그러나 어른들이 읽으라고 하는 위인전 속 위인들은 '자기만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의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그만 괴롭혔으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그냥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봄꽃과 어린이
학원 입구 편의점에 아이들이 가득합니다. 진열대들 사이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사내아이들을 보니 어머니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아이가 가만히 있으면 병든 거야. 특히 사내애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해.” 봄꽃마다 빛깔이 다르고 향기가 다르듯 아이들도 각양각색입니다. 혼자 가만히 있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쉬지 않고 친구들을 집적이는 아이도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가만히 있는 아이는 병든 거’라고 했지만, 요즘 어른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면 병든 거’라고 합니다. 그런 어른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온종일 교실을 전전하며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질문도 반발도 없이 순종만 하는 아이들을 보면 애완동물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중요한 학습은 교실 아닌 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많습니다. 첫 학습은 잉태의 순간과 임신 기간에 이루어집니다. 사람과 마주앉아서도 스마트폰으로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 ‘멀티태스커들’, 그 ‘산만한’ 부모들이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뻔합니다.
자라면서 아이는 자신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부모와 함께 앉은 밥상에서 바른 습관과 예절을 배웁니다. 부모와 함께 음악을 듣고 음악에 맞춰 춤춰본 아이는 미술학원, 음악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됩니다. 부모가 신문을 보며 나랏일과 지구의 미래를 고민하면, 아이는 저절로 역사를 배우고 영어학원에서 원어민 강사를 만나지 않아도 지구가 하나의 마을임을 알게 됩니다. 행복과 교양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배어듭니다.
우리 주변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아이들에게 이리 가라, 저리 가라 강요하는 어른이 적지 않습니다. 옳은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니 남의 삶을 흉내 내며, 자녀들에게도 무조건 다른 아이들처럼 하라고 종용합니다.
‘아이는 부모가 말하는 대로 하지 않고 부모가 하는 대로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녀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아이를 ‘위해’ 쓰는 시간과 노력의 절반은 자신을 개선하는 데 써야 합니다. 아이들을 감시하던 시선을 자신에게 돌려 하루 한 시간이라도 자신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느긋한 어른과 생활하는 아이가 과잉행동장애를 앓을 가능성은 4월에 얼음이 얼 가능성만큼 희박합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어린이에게 필요한 건 마음껏 뛰어노는 것이고, 창의력은 학원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노는 틈에 저절로 솟아나는 것이니, 어른들은 그저 기다리면 됩니다. 긴 겨울을 견뎌내고 아름답게 피어난 봄꽃들처럼, 아이들이 제 나이가 주는 고민과 시련을 이겨내고 활짝 필 때까지 믿고 기다려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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