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한겨레신문 '삶의 창'에 실린 제 칼럼입니다. 지금 한국일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이 나라 언론 종사자들을 각성시키고 단결시키는 데에 기여하길 바랍니다.
안녕, 한국일보!
만날 때 하는 인사도 ‘안녕!’이고 헤어질 때 하는 말도 ‘안녕!’이니 새삼 신기합니다. 이 글 제목의 ‘안녕!’은 두 번째 ‘안녕’입니다. 지난 6월19일 제 블로그에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께’라는 편지를 썼고, 열흘 후 <한겨레> ‘친절한 기자들’에 <한국일보> 사회부 이성택 기자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어 다시는 이 일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엊그제 한국일보에 실린 광고를 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광고에 쓰인 것처럼 한국일보는 1954년 6·25전쟁 직후 출범해 내년에 창간 60주년을 맞습니다. 창립자
장기영씨와 맏아들 장강재씨가 타계한 후 우여곡절 끝에 둘째 아들 장재구씨가 회사를 이끌었는데, 한국일보 노동조합은 지난 4월29일 그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신문사 재산인 중학동 사옥 우선매수청구권을 비밀리에 처분해 개인 빚을 갚는 데
사용했다는 겁니다.
그러자 장씨는 지난 6월15일 용역을 동원해 편집국을 폐쇄하고, 180여 기자들의 출입을 막았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 아래서도 사주가 편집국을 폐쇄하고 기자를 쫓아낸 일은 없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일입니다. 오죽하면 ‘국경 없는 기자회’가 장 회장의 행동에 ‘경악한다’(appalled)고 했겠습니까?
제가 한국일보 사태를 예의 주시하는 건 제가 그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서가 아니고, 이 사건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경영자나 그의 가족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언론사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국민이 주주인 한겨레와 사원주주회사인 <경향신문> 등을 제외하면, 한국일보만큼 사주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신문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국일보마저 특정 일가의 마름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경력기자를 ‘00명’ 모집한다고 광고하는 걸 보니, 한국일보 경영진은 잘못을 인정할 마음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번 일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신문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 것 같습니다. 통신 기사와 ‘외신종합’으로 신문을 만들다 보니 골치 아픈
기자들을 편집국에 들이는 대신 말 잘 듣는 ‘00명’만 있으면 신문을 찍어낼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된 거지요.
그러나 문재인, 안철수, 이재오, 남경필씨 등 국회의원들이 한국일보 기자들을 찾아 격려하고 타 언론사 기자들이 그들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건 이 사건이 상징하는 이 나라 언론자유의 위기를 인식하기 때문일 겁니다. ‘진짜 기자’를 꿈꾸는 사람이 ‘한국일보 경력기자 모집’에 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은 5월3일 이 사건을 형사5부에 배당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한 뒤 잠잠하다가 6월28일에야 전 한국일보 사장 이종승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습니다. 검찰이 이 사건을 다루는 태도를 보면 언론 혹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이 정부의 속내를 알 수 있겠지요. ‘진짜 기자’가 되려면 우선 눈 크게 뜨고 검찰의 행보를 지켜봐야 합니다. 한국일보가 정상화되어 ‘진짜’ 기자들이 편집국으로 들어가는 날, 그날 큰 소리로 첫 번째 ‘안녕!’을 외치고 싶습니다. 구독 중단한 한국일보, 다시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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