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 10

성공이란 (2023년 3월 30일)

내일이면 3월도 끝이 납니다. 2023년의 4분의 1이 지나갔지만, '이것을 했다'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4월부터는 '성공'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경향신문에 실린 '임의진의 시골편지'에 인용된 '성공'을 하고 싶습니다. 링크를 클릭하면 '시골편지'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3300300085 “성공이란 남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여유. 남이 살아내는 인생을 향해 격려하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와 계획을 중단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완수하는 것. 상처받을 말은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것. 차갑고 쌀쌀한 이웃에 예의로 대하는 것. 남을 헐뜯는 말이 떠돌 때 귀를 닫는 것. 슬픔에 잠긴 이를 위로하고 함..

동행 2023.03.30

노년일기 158: 마지막 인사 (2023년 3월 26일)

어머니는 우리 나이로 94세, 만 나이로는 93세입니다. 타고난 미모와 피부 덕에 연세보다 젊어 보이시지만 귀가 들리지 않아 고생하십니다. 비싼 보청기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 대화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평소에 하던 대로 얘기하면 "너는 왜 그렇게 말을 작게 하느냐?"며 나무라시고, 크게 말하면 "왜 소리를 지르느냐?"고 야단치십니다. 귀가 들리지 않아서 그러시는지 어머니는 큰소리로 말씀하실 때가 많습니다. 귀로 들어가지 못하는 소리들이 모여서 입으로 나오는가?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약골이셨지만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잘 들으셨는데, 타고난 건강 체질인 어머니는 왜 청력이 바닥나 외롭고 힘든 말년을 보내시는 걸까요? 홀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시던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동행 2023.03.26

폴 고갱이 받은 거절 편지 (2023년 3월 23일)

이라는 제목의 책 63쪽을 읽다가 '거절의 미학'도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타히티 섬에서 그린 그림이 파리에서 좋은 평을 받지 못하자 고갱 (1848-1903)은 전시회를 열어 그 수익금으로 다시 타히티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는 저명한 스웨덴 작가 오거스트 스트린베리 (August Strindberg: 1849-1912)에게 전시회 카탈로그의 서문을 써달라고 부탁하지만 스트린베리는 정중한 편지를 보내 거절합니다. 아래는 그 편지의 일부입니다. 오랫동안 소설 출간을 시도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 저는 고갱이 참 부럽습니다. 고갱과 저를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저도 스트린베리의 편지와 같은 거절 편지를 받아보고 싶습니다. 고갱은 스트린베리의 편지를 전시회 카탈로그의 서문 자리에 게재하고, 몇 년 후 성명서이자 ..

오늘의 문장 2023.03.23

나뭇잎을 닦으며 (2023년 3월 20일)

먼지 속에서도 봄이 옵니다. 먼지 앉은 나뭇잎을 닦다 보면 머릿속도 말개지는 것 같습니다. 물을 많이 먹어 썩은 나뭇가지를 잘라내며 과유불급,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고 지나친 사랑은 사랑의 대상을 해침을 상기합니다. 대파가 쑥쑥 자라고 무가 연보랏빛 꽃을 피운 베란다를 서성이다 보면 부끄럽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자신을 키우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아래는 정호승 시인의 에 수록된 시 '나뭇잎을 닦다'입니다. 나뭇잎을 닦다 저 소나기가 나뭇잎을 닦아주고 가는 것을 보라 저 가랑비가 나뭇잎을 닦아주고 가는 것을 보라 저 봄비가 나뭇잎을 닦아주고 기뻐하는 것을 보라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 고이고이 잠드는 것을 보라 우리가 나뭇잎에 앉은 먼지를 닦는 일은 우리 스스로 나뭇잎이 되는 일이다 우리 스스..

나의 이야기 2023.03.20

노년일기 157: 추억여행 (2023년 3월 17일)

어젠 오랜만에 인사동에 나가 전에 한국일보사 일곱 개 신문사에서 일했던 동료 여자 기자들을 만났습니다. 한국일보, The Korea Times, 서울경제신문, 일간스포츠... '장명수 칼럼'으로 한국일보의 지가를 올리시고 이제는 이화학당 이사장으로 활약하시는 장명수 선배님, 체육기자로 문명(文名)을 떨치시고 이젠 가드닝 전문가가 되신 성인숙 선배, 언론인과 외교관을 거쳐 화가로 살고 계신 지영선 선배, 그리고 각계각층에서 '맑은 물' 노릇을 하고 있는 옛 동료들과 후배들... 참석자들 모두 한목소리로 '한국일보사에서 일했으니 우리는 얼마나 운이 좋은가, 이런 인연을 만들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얘기하니 이젠 이승에 계시지 않은 많은 분들이 떠올랐습니다. 어느 신문사보다 앞서 견습기자 제도를 실시하여..

동행 2023.03.17

노년일기 156: 궁금합니다 (2023년 3월 13일)

허리 아프다던 첫째, 목이 아프다던 둘째, 이제 괜찮아졌을까요? 회사 일이 버겁다던 젊은 친구는 아직 그 회사에 다닐까요, 떠났을까요? 하나뿐인 아들의 일탈로 반쪽이 된 친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막 사별을 겪은 선배는 어떠실까요? 팔년 전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는 지금쯤 어디에 계실까요? 예전에 궁금한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알아보려 했지만, 이젠 가만히 기도만 합니다. 아픈 동생들, 회사 일에 부대끼던 젊은이, 반쪽이 되어 버린 친구, 사별을 겪은 선배 모두 부디 견딜 만하기를, 부디 아무렇지 않게 되기를... 아버지, 내일은 이승에 당신 태어나셨던 날... 팔년은 팔일 같고 저는 여전히 아버지가 궁금합니다. 아버지도 저희가 궁금하신가요?

나의 이야기 2023.03.13

노년일기 155: 누군가가 나를 추모할 때 (2023년 3월 10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특별한 친구 같은 책 몇 권이 있을 겁니다. 제게도 그런 책들이 있습니다. 바다가 보고 싶거나 숲 속에 들어앉고 싶을 때면 린다 엘리스(Linda Ellis)와 맥 앤더슨 (Mac Anderson)이 함께 만든 책 를 음미합니다. 는 아무개가 몇 년에 태어나 몇 년에 죽었음을 나타낼 때 쓰는 표시 (ㅡ)입니다. 예를 들어 '1900ㅡ2000' 가운데의 표시로서 바로 그 사람의 생애를 뜻합니다. 2010년 12월 이 귀한 책을 제게 선물해주신 김광호 선생님께 감사하며, 책의 제목이 된 시 'The Dash'의 마지막 연을 대충 번역해 옮겨둡니다. 봄은 죽은 땅에서 새싹이 돋는 계절, 생과 함께 죽음을 생각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So when your eulogy is b..

나의 이야기 2023.03.10

완벽한 인간을 위한 자연의 시도 (2023년 3월 6일)

오래전 읽은 책이 문득 찾아와 영 떠나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하는 수 없이 다시 읽어야 합니다. 수십 년만에 미국 작가 손턴 와일더 (Thornton Wilder: 1897-1975)의 를 읽고 있는 이유입니다. 제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대학 축제 때 연극 '우리 읍내'를 공연하는 학교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3막으로 이루어진 이 희곡은 그로버스 코너즈 (Grover's Corners)'라는 가상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읽은 2막의 문장 몇 개를 아래에 옮겨둡니다. 말없음표는 단어들이 생략됐음을 뜻합니다. "... every child born into the world is nature'..

오늘의 문장 2023.03.06

네 잎 클로버, 세 잎 클로버 (2023년 3월 4일)

어젠 동네 큰길과 골목마다 어린이와 젊은이가 가득했습니다. 학교 많은 동네에 사는 재미를 만끽했다고 할까요? 학교 옆 카페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어머니들로 붐볐습니다. 전엔 카페 안팎을 종횡무진하는 아이들이 눈에 거슬렸는데 이젠 귀엽기만 하니, 제가 나이 덕을 보나 봅니다. 종일 온갖 배움터를 드나들며 바쁘게 지내던 아이들이 모처럼 쉬는 시간을 즐기는구나 생각하니 아이들이 행복한 쉼표들처럼 보였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자라거라! 행운과 행복을 누리면서!'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지켜보았습니다. 두어 시간 후엔 일러스트포잇 김수자 씨의 블로그에서 아름다운 클로버 무더기를 만났습니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김수자 씨의 그림은 온통 행운..

동행 2023.03.04

노년일기 154: 사랑받는 노인, 사랑을 잃는 노인 (2023년 3월 1일)

이틀 후 어머니의 생신을 앞두고 아들딸들과 배우자들이 어머니와 점심을 함께합니다. 젊은이는 하나도 없는 식탁, 가장 어린 사람도 예순이 넘었습니다. 노인들이 모이면 으레 그렇듯 화제는 건강과 질병, 임플란트와 틀니 얘기를 넘나듭니다. 식사 후에 간 카페에서는 한 테이블엔 어머니가 사위와 아들들과 앉고 다른 테이블엔 며느리들과 딸들이 앉습니다. 어머니는 보청기를 끼셨지만 자기 테이블의 얘기도 잘 못 들으십니다. 며느리들은 어머니로 인해 서운했던 점을 시누이들에게 얘기하고 시누이들은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를 얘기하며 올케들을 위로합니다. 이야기는 어머니를 넘어 며느리들의 어머니들로 이어집니다. 어떤 노인은 늙어서도 사랑받지만 어떤 노인은 나이를 얻을수록 사랑을 잃어버립니다. 원인은 무엇보다 아집(我執)입니다...

동행 2023.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