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노년일기 158: 마지막 인사 (2023년 3월 26일)

divicom 2023. 3. 26. 21:12

어머니는 우리 나이로 94세, 만 나이로는 93세입니다.

타고난 미모와 피부 덕에 연세보다 젊어 보이시지만

귀가 들리지 않아 고생하십니다. 비싼 보청기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 대화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평소에 하던 대로

얘기하면 "너는 왜 그렇게 말을 작게 하느냐?"며

나무라시고, 크게 말하면 "왜 소리를 지르느냐?"고

야단치십니다.

 

귀가 들리지 않아서 그러시는지 어머니는 큰소리로

말씀하실 때가 많습니다. 귀로 들어가지 못하는 소리들이

모여서 입으로 나오는가?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약골이셨지만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잘 들으셨는데, 타고난 건강 체질인 어머니는 왜

청력이 바닥나 외롭고 힘든 말년을 보내시는 걸까요?

 

홀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시던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하시고 노래교실과 노래방에도

자주 다니셨는데, '그동안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놀았으니

이제 홀로 있는 시간을 갖고 죽음을 준비하라'는

인생의 배려일까요?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를 흉내 내며 살고 있지만

아버지처럼 살다 죽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습니다.

요즘 제가 어머니 곁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제 주변 사람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가끔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아버지

귀에 대고 마지막 인사를 했는데 어머니가 떠나가실 땐 

어떻게 할까...

 

막혔던 어머니의 귀가 그 순간엔 환히 열리어 자손들의 

눈물 젖은 인사를 들으실 수 있을까요?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