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한복 (2013년 2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엔 어제 하루 동안 동분서주한 박 대통령의 사진이 여러 장 실려 있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두 벌의 양장과 두 벌의 한복입니다. 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지금까지 했던 모든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은 어제 한복을 입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한 벌의 한복만 입었어도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과 두루마기를 벗고 치마 저고리만 입은 모습으로도 두 벌의 효과를 낼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한복 차림의 박 대통령을 보니 오래 전에 본 그의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떠오릅니다. 한복을 참 맵시있게 입는 분이었습니다. 그 점 때문에 그분을 좋아하는 국민들도 있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에 시달린 사람들조차 육여사에 대해 악평을 아끼는 이유는 한복 자태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청와대의 야당'으로 자처했기 때문일 겁니다.   

박 대통령이 국립현충원 방명록에 쓴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으로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는 그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의 글씨와 그의 아버지 글씨가 닮아서입니다.

젊은 시절 부모님과 살던 청와대에 나이 들어 홑몸으로 들어간 박 대통령에겐 조언을 해줄 아버지도 '야당' 노릇을 해줄 어머니도 계시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공간과 시간을 채울 사람들이 궁금합니다. 공식 발표도 없이 업무를 시작했다는 청와대 비서관들이 모두 대통령의 오랜 측근들이라고 비난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어제의 심복이 내일도 심복일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심복은 충신의 동의어가 아닙니다. 대통령의 사람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진정한 '야당'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 대통령의 글씨와 자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았어도 운명만은 닮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약속한 '국민행복시대'를 연 후 어제보다 더 품위있고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퇴임하기를 바랍니다.